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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인더스 문명

인도 학술 조사 이야기 (18) : 함께 묻힌 먼 옛날 그 시절 부부-연인들 (3)

by 초야잠필 2019.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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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여기서 잠시 인더스 문명 이야기를 좀 해보자. 우리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인더스 문명이 인류 4대 문명 (물론 구대륙이다)의 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문명은 정말 오래된 문명이고 전성기 당시  이 문명이 포괄하던 영역 역시 방대하다. 당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 영역을 합친 지리적 범위보다 더 넓은 범위가 인더스 문명이 미치는 지역이었다. 아래 동영상을 보자. 


세계사를 간추려 몇분간에 전부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화면 전체로 확대하면 더 잘 볼 수 있다. 




이 동영상에서 주의깊게 보아야 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우선 인더스 문명. 동영상이 시작되고 1분 정도까지 인더스 문명이 나온다. 오늘날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인도를 포괄하는 지역이다. 이 문명이 얼마나 빨리 시작되었고 전성기 때 문명이 얼마나 넓은 지역에 미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2. 두번째는 1분이 넘어가면 인더스 문명이 사라진 것을 볼수 있다. 


3. 그러다가 동영상 2분째가 되면 다시 인도아대륙에 문명이 출현한다. 동영상에는 이 문명을 "Vedic India"라고 표시 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름 붙은 이유는 이 시대가 힌두교 경전 중 가장 오래된 성전인 "베다 (Vedas)"와 관련이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베다시대 (기원전 1500-기원전 500) 야 말로 이후 힌두교와 산스크리트 문학이 처음 형성되고 번영하기 시작한 시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는 "인도문화"가 바로 베다시대 문화와 매우 관련이 깊다고 한다. 


아래 그림을 보자. 4대 문명의 비교인데 인도에서 만든 것이라 상대적으로 다른 문명보다 인도 문명의 번영이 좀 강조된 측면이 있지만 이를 고려해서 보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올수록 기원원년에 가까와 지는 것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원전 먼 옛날이 된다. 



가장 왼쪽이 인도 문명. 여기서 Harappan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인더스 문명이다. Monarchies라고 표시된 시대 부터가 바로 베다시대 (Vedic period) 이다. 


이 시대 구분이 중요한것은 인도사에서 "인더스문명"과 "베다시대" 사이에 중대한 단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 동영상에는 이 두시대 사이에 아예 문명이 사라진 것처럼 묘사해 놓았지만 그것은 아니고 양자간에 많은 문화적 연속성이 확인되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중대한 단절"이란 인도사에서 "기억의 단절"을 의미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극히 최근까지 심지어는 20세기 초반까지도 인도인들이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래된 역사는 "베다시대"이고 "인더스 문명"은 그 족보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인들은 이 "베다시대"를 까마득한 옛날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인더스 문명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인도사가 짧다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인더스 문명을 그 자리에서 지우고 그 기간을 베다시대로 길게 늘려 채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옳겠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이 처음 인도에 진출했을때 역사학자들은 인도사가 인도인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오래되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 이전에 베다 시대를 고려한다 해도 그리스 문명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것보다도 짧은 문명일수도 있다고 보았던 것인데-. 


이러한 서양인의 인식이 일거에 바뀐 사건이 1924년에 일어났다. 


고고학자 John Marshall이 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 인도아대륙에서 "잊혀진 고대문명"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마샬이 숨가쁘게 날린 멘트는 다음과 같다. 


"Not often has it been given to archaeologists , as it was given to Schliemann at Tiryns and Mycenae, or to Stein in the deserts of Turkestan, to light upon the remains of a long forgotten civilization. It looks, however, at this moment, as if we were on the threshold of such a discovery in the plains of the Indus."


바로 이 시점부터 고대문명으로서 "인더스 문명"이 세계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우리가 아는 인더스문명의 연구사는 이제 100년도 채 안된 셈이다 (사실 인더스 문명 유적지가 최초로 사람들에게 인지되기는 이보다 훨씬 전인 19세기 초반이다. 하지만 이 유적이 시간이 매우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문명으로 인식되기는 마샬의 이 보고가 처음이다). 



인더스 문명 연구사에 대해서는 더 잘 아시는 분들이 독자 중에도 계실 것이므로 이 정도만 쓰기로 한다. 다만 인더스 문명이 왜 인도인의 자랑도 되고 곤혹스럽기도 한 양면성이 있는지 적어보겠다. 


첫째로 자긍심의 측면은 당연하다. 세계 4대문명이니. 인도인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무한히 자랑스러워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적지 않겠다. 그렇다면 왜 곤혹스러운가? 


바로 위에도 썼지만 인더스 문명 자체에 대한 기억이 인도사에서 통채로 지워졌기 때문이다. 인도의 고대사회를 묘사한 기록 이른바 베다 문헌 (Vedic text) 에는 인더스 문명 사회와 관련지을 수 있을 만한 묘사가 별로 없다. 인더스 문명 이후에 이어지는 "베다 시대" 사회와는 분명히 연관성이 있는데 인더스 문명시기까지 베다 문헌에 묘사된 이야기를 소급하여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은 것이다. 


쉽게 말해서 비유해 본다면 이런것이다. 


우리가 쥐고 있는 문헌 기록중 가장 이른것이 "고조선"인데, 고고학 발굴로 이보다 더 올라가는 문명이 발견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헌기록은 "고조선"이 처음으로 기록 만으로는 이 문명을 설명할 길이 없는 상태. 


바로 그런 상황인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마하바라타 중 바그바드 기타의 내용이 되는 전투 장면. Vedic 문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베다 시대에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 중의 하나가 "전차=chariot"다.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크리슈나"가 말이 끄는 전차를 몰며 "아르주나"를 돕는 장면이 나온다. 위키피디아에 기술된 내용을 간추려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마하바라타》의 주제가 되고 있는 바라타족의 전쟁은 쿠루국(國)의 100인의 왕자와 판두왕의 다섯 왕자와의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상호간에 종형제였지만 형세의 진전에 다라 마침내 전쟁에 사투(死鬪)를 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대회전(大會戰)이 전개되려고 하는 때에 판두의 한 왕자인 아르주나는 골육상쟁의 전율할 운명을 비탄(悲嘆)하며 자기 수레 몰이꾼인 크리슈나(실은 최고신 비슈누의 화신)를 향하여 고뇌를 호소한다. 아르주나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크리슈나는 두려워 하는 아르주나를 격려하면서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즉시 전장에 돌입하기를 주장한다. 그가 이르기를,


“이 전쟁은 정의(正義)의 싸움이다. 정의의 싸움에 투신하는 것은 무사가 본래 바라는 바이다. 전투를 피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자신의 본무(本務)를 실행한다는 것이 주요문제이지, 일의 성패는 문제삼지 않는다. 당신이 전심(專心)해야 할 점은 오직 행동이지 결코 결과가 아니다. 행동의 결과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 (중략)....

이러한 교훈을 듣고서 아르주나 왕자는 "나의 각오는 결정되었다. 의혹은 이미 사라졌다"라고 말하면서, 마음의 불안을 버리고 흔연히 전장에 진출하여 위대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1820년 경 미상 작가에 의해 제작된 마하바라타 Kurukshetra 전쟁장면. 왼쪽 전차에는 아르주나가 타고 있고 앞에서 말을 타고 전차를 모는 사람이 크리슈나이다. 



아르주나와 크리슈나.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있다. 이처럼 말과 전차는 지금도 베다시대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이다.


여러모로 전차와 말은  베다시대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로 할 수 있다. 말과 전차가 없는 베다시대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더스 문명에서는 베다시대의 상징이라 할 말과 전차가 지금까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사나울리 (Sanauli)유적에서 발견된 "전차"는 인도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자세한 기사는 여기 클릭). 시대가 상당히 거슬러 올라간 베다시대 이전으로 생각되는 유적에서 나온 이 전차가 바로 베다에 나오는 그런 전차일까? 베다시대 이전 유적에서 말과 전차의 흔적을 찾아 헤메는 인도인의 마음은 외부인의 눈으로는 이해가 가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때문에 인도 학자들과 대중은 인더스 문명 유적에서 말과 전차의 발견을 무척 희구하고 있는 것 같다).


인더스 문명이 진정 베다시대와 강한 유사성이 있는 사회였다면 왜 말과 전차가 그렇게 희귀한 것일까? 


여러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명쾌한 해법은 인더스 문명은 인도인 역사 기록과 기억에 남아 있는 베다 사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회라고 이해하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인도인의 기억에서 이 위대한 문명은 완전히 망각되어 수천년이 지나 다시 발견된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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