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을 신화화하면서 더 강화한 측면이 없지 않으니 그가 이성계를 보좌해 조선왕조를 개창한 일등공신 중 한 명임은 부인할 수 없거니와
그의 이런 궤적 중 하나로 지금의 서울을 신왕조 수도로 정한 일도 빠질 수 없으니 그 정궁이요 법궁으로 경복궁 자리를 확정한 일 역시 빼놓을 순 없다.
그 입지를 논할 적에 좌측룡 우백호니 풍수로는 완벽한 데니 하는 자기합리화가 도전 자신한테도 보이니 그야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본인이 정한 자리가 최적이어야지 실패로 규정할 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글을 좀 아는 백면서생에 지나지 않았을뿐이니 그가 건축을 알았으며 기상에 도통했겠는가? 이런 데는 젬병에 지나지 않았다.
광화문은 나로서는 반평을 넘는 서른해를 기반으로 보내는 곳이라 내가 30년째 일하는 공장이 다름 아닌 광화문 그 복판을 차지한다.
살아보니 광화문은 사람 살 데가 아니다. 저주받은 땅 딱 그에 걸맞는 곳이라 무엇보다 여름엔 무덥기 짝이 없고 겨울바람은 매섭기 짝이 없다.
특히 겨울 광화문은 냉골 그 자체라 북쪽에서 밀어내치는 찬바람은 시베리아 북풍 한설 그것이다.
이 냉골에다 왜 조선왕조가 그 법궁을 삼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왜 이곳이었겠는가?
간단하다. 토지매입 보상비가 다른 후보군보다 적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흔적이 역사에는 뚜렷치 아니하나 지금의 경복궁 일대는 황무지에 지나지 않았으니 왜 그랬겠는가? 사람 살 데가 아닌 까닭이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여름 나 봐라 겨울 되어 봐라. 광화문은 저주받은 땅이다.
그 무더위 찬바람을 피할 데라곤 북악 바로 아래 지금의 청와대 자리나 인왕산 아래가 있을 뿐이다.
실제 고고학적 흔적을 봐도 경복궁과 그 전면 광화문대로 인근으로는 고려시대 이전 사람이 삶의 터전으로 삼은 흔적이 없다!
왜 조선왕조 왕들이 걸핏하면 멀쩡한 법궁을 버리고 창덕궁이니 창경궁 같은 데로 갔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지만 창덕궁만 해도 경복궁과 바람 세기가 다르다.
자연과의 조화? 웃기는 소리다. 사람 살 데가 아니라 해서 경복궁을 버리고 창덕궁을 선택했을 뿐이다.
광화문 살아봐라 내 말을 증명하는 데는 한 해 한 철이면 충분하다.
광화문은 저주받은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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