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조선후기, 느닷없이 들고나온 여전제

by 초야잠필 2024. 9. 10.
반응형
고대 동아시아가 상정한 이상적 정전제井田制. 이것이 이상이긴 했고, 실제 구현한 구석도 없지 않다. 주周왕조가 그러해서 중앙에 천자가 직접 지배하는 종실이 있고, 그 사방을 동성 제후 혹은 이성 제후가 위임 통치를 했다. 이것이 훗날 결국 독립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종실이 허수아비가 되고 말았지만, 그 이상을 실제로 구현하려 한 흔적이다. 이후 역사는 천자에 의한 전 국토에 대한 직접 지배를 노린 군현제와, 그에 상응하는 저와 같은 주왕실 봉건제가 맞서며 줄기차체 투쟁했다. 물론 봉건제 또한 모든 천하는 천자의 것이라는 바탕을 깔기는 했지만 허울에 지나지 않는 때가 많았다. 여전제는 실상 저 봉건제를 기반으로 삼는 듯하지만, 내실을 보면 그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군현제적 발현이었다. 문제는 가진 자들이 누구도 원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 땅인데 아무리 왕이라도 해서 지 땅이라고 뺏어가 지 맘대로 한다면 누가 반기겠는가? 더구나 조선은 이미 전기 이래 입향조를 내세운 전국적인 분할 점거, 사전에 기반하는 그런 통치망이 확고히 구축된 상황이었다.

 
동아시아사의 발전을 보면 한국사에서 유난한 부분은 

사전私田을 뒤집어 공전公田화한 시도가 최소한 두 번은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 번은 전시과 제도. 

또 한번은 과전법 체제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한국사에는 있지만 

전시과제도와 과전법 체제는 사전을 부정하고 경제제도를 과거로 되돌린 

반동적 흐름에 해당한다. 

공전제를 무너뜨리고 사전이 성장하여 나올 때 

한국처럼 사전을 완전히 해체하고 공전제로 복귀를 관철한 나라는 없다.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억지로 만들어 놓은 공전의 구조는 다시 무너지고 
사전이 다시 자라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조선 후기. 

나라가 잘 안 돌아간다고 

공전제를 다시 하자고 들고 나온 얼빠진 유학자들이 있었다. 

여전제 한전제 균전제 다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서 과전법 체제로 돌아가자 그 소리인데 

이걸 또 대단한 개혁안, 근대적 개혁이라고 치장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한국사 스토리다. 

이 스토리를 가지고는 

세계사적 차원에서 중세가 무너지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가 나오고 

그 자본주의 맹아가 다시 시민사회를 만들어 성장하는 이런 흐름을 도저히 끼워 맞출 수가 없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토지개혁론은
개혁이 아니라 공상이고 

그게 관철된다면 조선초기의 사전혁파, 과전법 체제를 방불한 제도가 수백년 만에 또다시 생기는 것으로, 

시대착오적인 정신나간 정책이었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