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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사의 발전을 보면 한국사에서 유난한 부분은
사전私田을 뒤집어 공전公田화한 시도가 최소한 두 번은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 번은 전시과 제도.
또 한번은 과전법 체제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한국사에는 있지만
전시과제도와 과전법 체제는 사전을 부정하고 경제제도를 과거로 되돌린
반동적 흐름에 해당한다.
공전제를 무너뜨리고 사전이 성장하여 나올 때
한국처럼 사전을 완전히 해체하고 공전제로 복귀를 관철한 나라는 없다.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억지로 만들어 놓은 공전의 구조는 다시 무너지고
사전이 다시 자라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조선 후기.
나라가 잘 안 돌아간다고
공전제를 다시 하자고 들고 나온 얼빠진 유학자들이 있었다.
여전제 한전제 균전제 다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서 과전법 체제로 돌아가자 그 소리인데
이걸 또 대단한 개혁안, 근대적 개혁이라고 치장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한국사 스토리다.
이 스토리를 가지고는
세계사적 차원에서 중세가 무너지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가 나오고
그 자본주의 맹아가 다시 시민사회를 만들어 성장하는 이런 흐름을 도저히 끼워 맞출 수가 없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토지개혁론은
개혁이 아니라 공상이고
그게 관철된다면 조선초기의 사전혁파, 과전법 체제를 방불한 제도가 수백년 만에 또다시 생기는 것으로,
시대착오적인 정신나간 정책이었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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