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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 금광에서 찾은 족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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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 shackles from the Ptolemaic gold mines of Ghozza (Egypt, Eastern Desert), 이집트 고차 금광에서 찾아낸 철제 족쇄라, 이를 통해 본 강제노역 참상이라,  

이런 제목을 단 오픈엑세스 논문 한 편이 Published online b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3 March 2025 했으니

나는 차순철 선생 소개로 이 소식을 알게 됐거니와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저 그림 한 장으로 족하다. 

저 그림을 실증하는 자료가 나왔다 이건데, 저 그림도 실증이라, 결국 같은 이야기다. 

저 그림 출처를 저 논문은 Image of a shackled man on a kylix found in Naples, dated to 490–480 BC, diameter 195mm (National Museum of Antiquities, Leiden, inv. K 1894/9.15) 라 해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발견된 기원전 490~480년 무렵 제작 추정 킬릭스에 드러난 족쇄 찬 남자(라이덴 국립 고대 유물 박물관)라 하거니와,

저런 족쇄를 찬 채 강제 노역에 혹사당한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요런 것들을 광산에서 수거했다고. 말 안 듣는 놈 채운 거 아냐?

 
우리는 흔히 그들을 노예 혹은 죄인이라 한다. 

1994년 이래 천연광산 자원 풍부한 이집트 동부 사막 발굴에 종사하는 프랑스 고고학 팀이 이곳 로마 요새와 프톨레마이오스 광산 유적 20곳 이상을 조사하다가

근자 고차Ghozza[고자?] 지역 광산에서 그 가혹한 광부들 생활상을 엿보게 하는 차꼬 관련 유물을 대거 수습했다고 한다. 
 

등고선 개념이 보이는 이 지도는 왜 나일강 기준 동쪽 지점들이 광산인지는 명확히 안다. 딱봐! 산들이 죽 이어지잖아?

 
저 일대 광산은 특히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332~30년)에 개발이 가속화한 모양이라,

헬레니즘 시대라면 이 일대를 로마가 모조리 먹어버리기 전 마케도니아 제국에서 비롯하는 이집트 피식민시대라,

그때 지배한 왕조가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이라 공짜로 먹다시피한 곳 뽕이나 뽑아가자 해서 대대적인 광산 개발을 해서 돈 좀 번 모양이다. 
 

마을인 듯

 
논문은 고자에서 족쇄가 발견되면서 노동력 일부가 최소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음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그에 종사한 사람들은 거주지를 확인하지 못해 그 생활은 어떠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나

다만 실제 절반 이상 드러난 마을을 보면 주민들이 일반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음을 시사하는 흔적이 있어 저들이 격리 구역에서 별도로 생활했는지는 살펴보겠다 한다. 

이 족쇄 발견을 기화로 조사자들은 "프톨레마이오스 금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직면한 가혹한 현실이 상기되었다. 이집트의 부와 동부 사막의 웅장한 산 아래에는 착취의 역사가 있다"면서

"이 광산에서 추출된 금은 이집트 통치자들의 야망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상당한 인적 비용이 들었다"고 말한다.
 

마을 유적인 듯

 
짐짓 어투는 휴머니즘이지만, 글쎄다 진짜로 그런지는 모르겠고 난 논문 소재 얻어 좋았다는 탄성으로 들린다. 

저 배경을 좀 더 정리하면 이집트는 은광이 없다.

대신 금은 좀 난 듯, 금으로 떡칠한다. 역사적으로 특히 동부 사막이 금광으로 개뱔되었다.

신왕국 시대(기원전 1500~1000년경)에 이곳 금광은 정점을 찍었다가 헬레니즘 시대에 다시 폭증한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약 40개 광산이 문을 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세운 새로운 왕조는 결국 돈이 있어야 했다. 

이 왕조 최초로 개설한 광산 중 하나가 프랑스 팀이 2014~2015년 발굴한 Samut North다.

이 광산은 다만 수명이 짧아 기원전 310년대에 4~5개 시즌(각각 6~9개월)만 지속했다.

그런 만큼 통제가 엄격했으며 노동력 일부(전부는 아니더라도)는 경비가 있는 기숙사에 수용되었다.

최근 발굴은 2020년이 대상으로 삼은 프톨레마이오스 금광 Ghozza다.

금광도 토끼뜀을 한 듯 몇년 울거먹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다녔으니 이 고자 금광은 기원전 3세기 후반에 몇 년간 뽕을 뽑아 먹었다. 

꽤 여러 해 동안 지속했으므로 Ghozza는 주거 블록, 거리, 행정 건물 및 목욕탕이 있는 마을이 보인다.

이는 잠깐씩 하다만 Samut North와는 사뭇 다른 점이다.

나아가 채굴 기술 또한 차이가 날 수밖에.

Samut North가 노동자들을 대형 제분공장에서 석영을 가루로 갈아서 분쇄하는 집단 분쇄 방법에다 동원했지만 Ghozza 노동자들은 손으로 직접 갈아서 광석을 가공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수백 개 오스트라카ostraca(글을 쓰는 데 사용되는 도기 파편)는 일상 활동에 대한 기록을 제공하며 일부 광부는 임금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마을에 경비가 있는 건물이 없다는 점과 함께 이는 더 다양하고 아마도 자유로운 노동력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이 프톨레마이오스 광산의 노동 역학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Ghozza에서는 강제 노동 증거도 발견되었다.

2023년 1월, 마을 동쪽 끝에 있는 넓은 지역인 44구역에서 철제 족쇄가 발견되었다.

이 건물군은 주로 보관 및 식품 조리에 사용되었으며, 숯 매장량과 많은 양의 철 슬래그는 이곳에서 금속 물체를 만들거나 수리했음을 나타낸다.

아마도 이러한 활동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족쇄 두 세트가 발견되었다.

첫 번째 세트는 7개 발 고리와 2개 관절 링크로 구성되며, 복도 44.15 바닥에 파낸 구덩이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두 번째 세트는 4개 링크와 2개 링 조각으로 구성되며, 다른 철제 물체와 함께 44.11호실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이러한 족쇄는 동물 제지용이 아니었다. 동부 사막에서는 밧줄을 그 목적으로 일반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이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수감자 발목에 직접 묶었을 때, 이러한 족쇄는 도움 없이는 풀 수 없었다.

족쇄는 손을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특히 그 무게를 감안할 때, 족쇄를 차고 걷는 일은 느리고 지쳤을 것이다. 

이 발견은 여러 면에서 예외적이다.

첫째, 이는 고차 광산 일부 노동자 지위에 대한 빛을 비추며, 기원전 2세기 작가 아가타르키데스Agatharchides(Diodorus Siculus, Library of History: 3.12.3; Oldfather Reference Oldfather1935에서 인용)의 고대 문헌과 일치한다.

아가타르키데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통치 하에서 금광 노동자들이 견뎌야 했던 혹독한 환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 그들은 많은 무리이고 모두 발이 묶였다. 그들은 낮과 밤새도록 쉬지 않고 일한다."

아가타르키데스는 광부들을 전쟁포로와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로 확인했지만, 그들 중 일부는 노예였을 가능성도 있다.

둘째 이 발견은 족쇄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를 제공하는데, 족쇄는 이집트에서 거의 기록되지 않은 유물로,

아가타르키데스 텍스트와 동시대 파피루스(P.Cair.Zen. 4.59782a, l. 69)에 '족쇄 한 쌍'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발견은 일반적으로 고고학 기록에서 흔하지 않으며, 특히 광산의 맥락에서 그렇다.

그리고 Ghozza 족쇄는 지중해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족쇄 중 하나로, 유럽에서 발견된 후기 철기 시대와 로마 시대의 족쇄보다 앞선다(예를 들어 Thompson Reference Thompson1993; Duval et al. Reference Duval, Gasco, Rétif and Tzortzis2006; Duval Reference Duval2008 참조).

Ghozza 족쇄는 그리스 세계에서 족쇄가 채워진 사람의 몇 안 되는 표현 중 하나와 매우 흡사하다.

또한 1870년대 그리스 라우리온Laurion 은광에서 발견된 족쇄와 매우 흡사하다(Boucher Reference Boucher2017).

이것은 그리스와 프톨레마이오스 광산 사이의 첫 번째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니다.

사무트 노스 석영 분쇄기는 라우리온에서 놀라운 유사점을 지닌다(Redon & Faucher Reference Redon and Faucher2020: 46).

이는 헬레니즘 시대에 이집트 금광에서 사용된 기술적 지식이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로 가져온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엔지니어에 의해 수입되어 설치되었음을 시사한다.

고차 족쇄는 이러한 문화 간 교류를 더욱 잘 보여준다.

논문은 아주 짧지만 아주 깐쫑하게 정리를 잘했다. 

이런 논문을 쓰야지 씰데없는 말들만 남발하는 한국고고학 논문과는 결이 다르다. 

 

논문 원문은 아래 

 

Iron shackles from the Ptolemaic gold mines of Ghozza (Egypt, Eastern Desert) | Antiquity | Cambridge Core

Iron shackles from the Ptolemaic gold mines of Ghozza (Egypt, Eastern Desert)

www.cambridg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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