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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오늘, 그러니깐 2014년 3월 8일 나는 내 페이스북 계정이 다음과 같이 썼다.
괘릉 석인상..
항용 이를 두고 아랍인이 들어왔네 안 왔네 하는데 난 저렇게 생긴 아랍인을 본 적이 없다.
아랍인 종자가 개량됐나?
이를 두고 지인들과 왈가왈부하는 와중에 나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들어왔건 말건 그렇다고 해서 저것이 아랍인상일 수는 없습니다. 이게 제 요집니다.
동아시아 보편학의 관점에서 보면 저건 guardian일 뿐입니다
무덤의 진묘수, 사찰의 사천왕상이나 금강역사와 상통하는 가디언이지요.
몇 년 뒤
내 저 주장과 딱 일맥상통하는 논문이 제출됐다.
저자는 내가 아니다.
저 딱 한 줄로 충분한 말을 어찌 논문으로 그리 구구절절히 쓸 수 있는지 나는 그 재주가 놀랍기만 하다.
저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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