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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인18

궁월군弓月君과 하타씨[秦氏] 이 궁월군弓月君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응신천황応神天皇 시대에서 백제에서 일본으로 120개県 백성을 거느리고 귀화했다. 이런 그를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좌경제번左京諸蕃・漢・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에 의하면 진 시황제秦始皇帝 3세손인 효무왕孝武王의 후예라 하면서 그의 아들인 공만왕功満王이 중애천황仲哀天皇 8年에 내조来朝하니 일명 융통왕融通王이라 하는 궁월군弓月君이 바로 공만왕의 아들이라 한다. 그에서 비롯하는 성씨를 진씨秦氏라 하고 이를 하타hata씨라 읽었다고 하니, 이런 기록 혹은 전승을 종합하면 하타씨는 (비록 그 뿌리는 중국에서 찾지만) 백제에서 유래한 씨족이다. 그렇다면 왜 궁월군에 뿌리를 두는 秦氏를 하필 '하타'씨라고 읽었을까? 弓月을 현대 일본어(한국어도 짬뽕)에 가깝게 훈차하여 이를 .. 2020. 7. 27.
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과 도래계(渡來系) 야요이인(弥生人) (3)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조몬인 (왼쪽)과 야요이인 (오른쪽) 골격. 조몬인보다 야요이인이 평균 신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같이 사진 찍은 사람은 우리 연구실 오창석 박사. 그렇다면 조몬인과 야요이인 인골은 어떤 차이가 있기에 서로 다른 종족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일까? 도이가하마 유적 인골로 대표되는 도래계 야요이인 인골은 특징이 다음과 같다. 1. 얼굴이 길다2. 코가 낮고 얼굴이 편평하다 (납작하다)3. 키가 크다. 이에 반해 조몬인 그리고 조몬계 야요이인 사람들 특징은 1. 얼굴이 짧고 2. 코가 높고 각이 있고 입체적인 얼굴 모양. 3. 키가 작다. 이 얼굴 모양을 요약해 그림으로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도래계 야요.. 2019. 1. 21.
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과 도래계(渡來系) 야요이인(弥生人) (2)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박물관 야외에 마련되어 있는 돔 구조물. 내부에 발굴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 돔 내부로 들어가는 길. 원래 모래 언덕이었다고 한다. 발굴된 도이가하마 유적 전경 디오라마. 야요이시대 묘지였던 유적 전체 넓이는 동서 약 260미터, 남북 약 70미터 정도라고 하는데 그 중 일부만 발굴된 상태라고 한다. 발굴된 구역 중에서도 일부에 돔을 만들어 내부를 보존한다. (at 도이가하마 인류학 박물관) 돔 내부. 바닥은 모래밭이다. 발굴된 인골들이 당시 모습대로 재현되어 있는데 총 80개체 분이다. 모두 레플리카라고 한다. 도이가하마 유적은 박물관 외부에 건설된 돔 안쪽에 보존되어 있다. 인골은 발굴 당시 모습 대로 재현되어 있는데 물론 진품은 아니다. 인골이 발.. 2019. 1. 17.
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과 도래계(渡來系) 야요이인(弥生人) (1)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지난 주말 일본 야마구치 현(山口県)에서 "일본고병리연구회(日本古病病理硏究會) 정기학회"가 있어 다녀왔다. 우리나라도 옛 질병을 연구하는 고병리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고병리연구회"가 있는데 비슷한 조직이 일본에도 있다. 고병리라는 연구 분야는 유럽과 북남미를 중심으로 상당한 숫자의 연구자가 활동하는데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는 그 숫자가 아직 미미하기만 하다. 우리처럼 일본도 아직 소수 연구자가 정기적으로 모여 의견을 주고 받는 정도 수준이라 할 수 있는데 상호간 드문 연구 주제를 다룬다는 동류의식이 흐르는 듯도 하다. 지난 주말 그들 학회는 사실 국제학회는 아니었지만, 학회가 열리는 장소가 마침 "도이가하마 유적 박물관(土井ヶ浜遺跡博物館)이라, 나.. 2019. 1. 14.
[예고] 짧은 스핀오프: 도이가하마 유적과 도래계 야요이인 원래 "개간과 산림남벌 그리고 말라리아"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려 했습니다만, 짧은 스핀오프를 그 전에 하나 쓰고 넘어가려 합니다. 일본에는 야마구치현에 도이가하마 유적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대륙계 야요이인" 인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곳으로 매우 유명한데,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다음 주 2회 정도, 도이가하마 유적과 야요이인의 일본도래에 대한 짧은 스핀오프를 하나 남기고자 합니다. 기대하시길-. 2019. 1. 12.
부여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扶餘扶蘇山城出土金銅光背)에 대한 나의 중간 결론 1. 扶餘 扶蘇山城 東門址 出土 金銅光背 뒷면 銘文은 ‘何多宜藏治佛’이며, 그 意味는 “하다의장(何多宜藏)이라는 사람이 佛像을 造成했다”는 뜻이다. 이를 從來에는 ‘何多宜藏法師’라고 읽은 것은 明白한 誤讀이다. 2. 이 金銅光背를 裝着한 佛像을 만든 ‘何多宜藏’은 6~7世紀, 主로 佛像을 만드는 일에 專門的으로 從事한 匠人 姓과 이름이다. ‘何多’가 姓氏다. 3. 이는 古代 日本에 登場하는 韓半島 渡來系 有力 家門 중 하나인 ‘하타씨[秦氏]’의 由來, 或은 性格을 가늠하는데 매우 重大할 수 있다. 4. 古代 日本 姓氏 ‘秦’는 百濟에서 渡來한 家門이다. 5. 秦氏는 日本書紀와 新撰姓氏錄 等의 古代 日本 文獻을 보면, 韓半島系 渡來人 중 弓月君을 始祖로 삼거니와, ‘弓月’에 대한 古代 韓國語 옮김이 바로 .. 201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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