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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9

부뚜막 장작불에 서린 아버지 불구덩이 앉을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나고 당신 저리 담뱃불 붙이던 모습도 떠오른다. 살가움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와는 거리가 너무나 컸다. 후회한들 어쩌겠는가? 저리 나는 쇠죽을 끓였으며 저 불 앞에서 영문법을 공부한 날이 있고,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외기도 했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에 나지 않고 적벽부 앞대가리만 오락가락한다. 임술지추 칠월기망 소자여객(壬戌之秋, 七月旣望, 蘇子與客)........................ *** 작년 오늘 나는 저랬다. 2019. 1. 10.
우골탑牛骨塔과 아버지 돌이켜 보면,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거니와 나는 가난을 팔아먹곤 한다. 그것이 지나쳐 지금도 가난하다고 하는건 아닌지 짐짓 염려되기는 한다. 그 시절에는 다들 그러했다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느냐 하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저 시절을 잊을 수는 없다. 어쩌면 잊지 않고자 하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잊지 않고자하는 세뇌 교육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다. 諱는 淵赫이요, 본관은 김녕이라, 1921년 음력 6월 15일 경북 금릉군 대덕면 조룡1리 222번지에서 출생했다. 선비先妣는 김해김씨이니 같은 금릉군 조마 태생으로 1남1녀를 두었다. 후비後妣 역시 김해김씨라 충무 태생으로 2남2녀를 두었다. 나는 5번째라, 선친이 마흔일곱에 얻은 아들이다. 얘기가 길어질 듯해서 짤라버린다. 아버지가 끌고.. 2018. 11. 5.
아버지들이여, 제때 죽어주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이름대로 백수를 했다. 그의 아들로 세자는 조다(助多). 아버지가 무려 왕위에만 79년간 있다 죽었을 때 조다는 죽고 없었다. 조다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문자명왕이다. 아버지가 하도 왕 노릇 오래하는 바람에 먼저 죽었으니 이름 그대로 쪼다가 되어 버렸다. 그보단 못하지만 조선 세종 역시 장장 32년이나 왕위에 있었다. 문종은 세종의 장자로 아버지가 재위 3년째인 142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때만 해도 아버지 세종은 모든 실권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그대로 두어야 했다. 그러니 세종이 왕위에 재위한 기간과 문종이 세자로 있은 기간은 같다. 내가 놀랍기만 한 것은 이 긴 기간 문종이 내리 죽죽 세자로 있었다는 점이다. 세자나 태자 생활은 왕보다 더 힘들다. 언제건 틈만 나면.. 2018.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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