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조선시대 미라 연구에서 볼 때 1)이라는 생각이 옳을까 아니면 2)가 타당할까.
먼저 1)에서 본다면 미라가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될 때 그로부터 다른 연구를 통해서는 얻기 어려운 귀중한 정보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필자가 이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과연 수백년 전 조상님들 시신에 의학적 정보가 남아 있기나 할까. 설사 남아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일까. 살아 있는 동물로 실험해도 항상 어려운 게 연구성과인데 과연 미라로 의학적 연구라는 게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의문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실제 연구를 해보니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생각보다 미라에는 "의학적 정보"가 훨씬 많이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이전까지는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던 중요한 정보를 미라 연구를 통해서 알게 된 일도 많았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 의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이 연구가 지닌 학술적 의의에 대해서는 이제 물음표를 붙여 의문을 표하는 경우는 최근에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최근 가끔 외신을 통해 보도되는 인류학적 보도들은 상당수가 미라에서 얻은 연구결과다.
가장 유명한 예가 5,000년 된 이탈리아의 미라, 외치다. 이미 이 미라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었으니 보았듯이 이 미라가 발견된 후 지금까지 이 단 한 구의 순동기chalcolithic 시대 미라에서 얻어낸 과학적 성과물은 산더미를 방불한다.
5,000년 된 사람 유해를 뼈로까지 확장해 보면 이만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외치가 지닌 엄청난 학술적 가치는 결국 이 유해가 미라라는 사실에서 온다. 완전히 육탈하여 뼈만 남은 사람 유해와 미라화해서 남은 유해 안에 남아 있는 과학적 가치는 단순 비교가 의미 없을 정도로 큰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미라 연구는 기본적 윤리 문제만 준수되는 한 큰 제한없이 시행되는 상황이다. 필자가 교류하는 유럽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선 이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만큼 연구가 축적됐고, 이를 바라보는 사회 전반 인식도 정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엽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래 유럽으로 수많은 이집트 미라가 흘러들어갔는데 (좀 오래된 박물관 컬렉션 치고 이집트 미라가 없는 곳이 없다) 이런 미라는 박물관 수장품의 하나로 관리되고 있으며 필요할 때는 과학자들이 많이 연구한다.
조선시대 미라는 외치보다도 어떤 면에서 더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고 당연히 그 학술적 의미도 마찬가지로 거대하므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조선시대 미라도 당연히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박물관 연구소 등지에서 보존되는 것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보인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미라 연구 종료 후 유족에게 바로 반납하거나 현행법을 따라 화장 처리하여 모시는 경우 아까운 연구자료가 사라진 것으로 안타까와 하는 시각도 많이 접했다. 물론 이런 시각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당연히 저런 시각은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미라연구에 관한 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연구 종료 후에 앞으로 유지 관리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미라 이야기 > 마왕퇴와 전국 초묘 미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왕퇴와 그 이웃-46]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3) (0) | 2025.03.09 |
---|---|
천지개벽한 마왕퇴 전문 호남박물원 (0) | 2025.03.09 |
[마왕퇴와 그 이웃-44]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1) (1) | 2025.03.09 |
[마왕퇴와 그 이웃-43] 그 시대의 조미료 (0) | 2025.03.09 |
[마왕퇴와 그 이웃-42] 계피, 약재와 향신료의 갈림길 (1) | 2025.03.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