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노인네들한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서기연도 개념이 없거나 희박한 이가 많아 본인 나이도 모르는 일이 허다하다.
이들은 연도를 간지로 말하는데 경자생이니 하는 개념이 익숙하고 덧붙여 양력 개념도 희박해서 그네가 말하는 날짜는 거개 음력이라 초엿새 운운한다.
같은 시대를 산다지만 다른 시간 세계를 산다.
한 세기전만 해도 이땅엔 hour 에 해당하는 시時가 없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분절하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주기를 성립케 하는 절대는 반복이다. 다람쥐 첫바뀌 돈다는데 이런 반복에 대한 발견 혹은 인지 없이 주기가 성립할 순 없다.
한데 주기는 순전히 작의적이며 관념적이며 역사적이다. 다람쥐가 도는 첫바퀴가 같을 수는 없다. 또 한 바퀴라 하지만 두 바퀴를 한 바퀴라 할 수도 있다.
또 반복이라지만 시간축에 놓으면 반복은 있을 수가 없어 그건 순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반복은 순전히 관념이며 편의상의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반복이라 규정하며, 그 반복을 근거로 주기를 만들어낸다.
이 반복이 역사적이라 함은 무엇인가? 그 준거가 문화권별로 다 다른 까닭이다.
예컨대 year 를 보자. 이를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年이며 해라고 말하지만, 동아시아문화권에서도 보면 그 준거는 달라서 어떤 때는 10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았고, 어떤 때는 12월로 간주했는가 하면, 어떤 때는 요즘 일반적인 1월을 준거로 삼기도 했다. 이 해는 그 명칭에서 보듯이 태양이 행차하는 반복을 근거로 한 것이다.
반면 달 month은 글자 그대로 달이 일정기간씩 같은 패턴으로 반복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달도 각기 달라서, 고대인도문화권과 동아시아문화권을 비교해도 그 준거는 달랐으니, 예컨대 동아시아문화권에서는 초하루에서 출발하지만, 인도에서는 그렇지 아니해서 출발선 자체가 달랐다.
하루[날] day도 마찬가지라, 이걸 해 뜨고 해 지기까지라 하지만, 문화권별로 다 다르다.
이건 내가 확인하지 못했는데, 해 달 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문화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반복이라 하지만, 그런 반복이라 해도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반복이라 할 것인지가 다른 것이며, 나아가 그런 반복 자체가 의미 없는 데도 적지 않은 것이다.
백년전만 해도 동아시아이에서는 백주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조선왕조가 건국 100주년을 기념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가? 200주년 행사를 광화문 광장에서 했다는 기록 본 적 있는가? 없었다. 십진법에 기초한 저런 개념 혹은 반복 자체가 없었다.
대신 다른 반복이 있었으니, 가장 흔한 기념이 60갑자에 따른 분절이었다. 십진법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60진법이 있었던 것이다.
서기 연도는 이 반복에 대한 일대 반란이었다. 서기 연도가 등장함으로써 시간은 반복이라는 축을 벗어나 일직선을 그리게 되었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지구의 탄생에서 아마 지구가 멸망하는 순간까지 계속 숫자를 쌓아나갈 것이다.
반복은 편의상이며 역사적이라 하지만, 그것이 의미가 없을 순 없는 까닭이 기억의 소환 때문이라고 본다.
서기 2020년인 올해 대한민국은 유난히 이 반복에 기초한 의미있는 주기가 유난히 많다. 오늘은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면서, 올해는 4.19혁명 60주년이다. 한국전쟁은 발발 70주년이고, 이것이 의미가 간과되는 점이 나로서는 몹시도 기이한데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이기도 하다.
저러한 각종 주기 혹은 주년을 맞아 시간과 공간, 그것들이 얼개를 이룬 반복을 생각하며 두서없이 긁적거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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