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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추락에는 날개가 없던 김기덕과 폴란스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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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시대가 바뀐 까닭도 있으리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기행을 용납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행은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을 딛고 섰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곪아터질 문제였다.

한데 그런 기행으로 점철한 예술가가 위대함과 등치하기 위한 절대의 조건이 있다. 그건 바로 그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대는 그런 기행을 또라이로 취급하며, 또 아주 자주 법이라는 이름으로 처벌한다. 사드가 그랬고 보들레르가 그랬다.

이들의 생전 행각은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었다. 죽고 나서야 그네들은 위대한 선각자 혹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혁명아로 칭송받기 시작했다. 

 

김기덕 

 

후세는 영화감독 김기덕을 어떻게 기억할까? 영화 하나로 대한민국을 뛰어넘어 세계거장 반열에 당당히 오른 그의 예술 재능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이 대목만큼은 후반부 논란과는 별개로 영원한 업적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지금은 지탄일로인 그 문제도 후세는 또 어떤 각도에서 미화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시점에서 중요한 대목은 그의 문제 행각은 작금 지탄 일색이며, 덧붙여 그에는 엄연히 그에서 비롯하는 트라우마에 허덕이는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미투운동 여파에 몰락한 김기덕은 결국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에서 우리는 또 하나 선조들의 미덕을 칭송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뭐냐?

집 떠나면 개고생

 

 

이라는 말이다. 떠났으되 하필 왜 그는 왜 미국이니 유럽이니 하는 이른바 선진국들을 피해서 이른바 제삼세계국가들을 방황했을까?

저에 특별히 가까운 인연들이 있어서 그랬으리라 막연히 짐작하거니와, 아무튼 그가 돌고돌다 뜻하지도 않은 마지막 안식처로 삼게 된 곳이 라트비아라....또 하필 그곳이 내가 그쪽 사정에는 어둡지만 여러 모로 한국보다 의료사정이 안 좋은 것만은 확실한 그런 곳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포로가 되다니, 참말로 종말 역시 영화만큼 드라마틱하다. 


김기덕처럼 영화로 정상을 구가하다 비슷한 이유로 급전추락한 이로 폴란스키 만한 사람 있을까?  

 

폴란스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 고국 폴란드로 이주해 그곳에서 커 가다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경험하는 평지풍파를 겪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발군의 두각을 드러낸 그는 1977년 영화배우 잭 니컬슨이 사는 LA 집에서 13살 사진 모델을 강강한 혐의로 체포 재판받다가 도피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는 이후 프랑스 국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나중에 더 구체적으로 행각을 보면 이 영감쟁이는 미성년 소녀들을 집중적으로 건드렸다. 악질 중의 악질이다.

이런 또라이들이 작품은 지랄맞도록 잘 만든다는 특징이 있는데, 폴란스키 역시 이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명장이었다. 

이 개망나니도 사드나 보들레르가 그랬듯이 후세가 어찌 평가할지 모르겠다. 다만 혹 이 글이 그런 후세까지 살아남는다면, 무수한 피해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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