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year old navy documents found on the wall of an abandoned house
이런 일이 썩 드물지는 않다. 조선일보는 창간호를 망실했는데, 그 창간호가 기적으로 근자 발굴이 되었으니, 어느 집안 비름빡 벽지에서 드러난 것이다. 발견자가 이걸 조선일보에 팔려 했더니만, 너무 액수를 높이 불러 조선이 거절했다는 후문도 있더라만, 이후 행방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프랑스에서는 근자 시골집 할매가 돈벼락을 맞았으니, 부엌에 검댕이 쓴 채 걸린 그림이 알고보니 치마부에 그림이었다 해서 이 할매 아마 심장마비로 가지 않았나 한다.
이번에 충남 태안 신진도 마을 어느 폐가 비름빡에서 발견했다는 군적부軍籍簿란 요새 우리한테 익숙한 군인 명단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이 군적에 기록한 명단은 일단 유사시에 군역 의무를 져야 하는 예비적 성격의 군인과 그를 먹여 살리는 보인保人 명단이다.
요새 예비군이라면 군역을 면탈하고서 민간인으로 돌아갔지만, 유사시에 동원되는 사람을 말하지만, 이 경우 예비군은 그와는 달라서 일단 유사시에는 군인으로 동원되는 잠재적 남자들이다.
조심할 것은 이 명단이 기록한 안흥진 소속 수군水軍도 당시 안흥진이라는 특정한 군사시설에 집단 수용돼 생활하는 현역 군인은 아니라, 그 동네 군역 의무를 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비군이라 한다.
그런 군역 자원 1명에는 保라는 사람들이 한명씩 짝지워져 있음을 보거니와, 이들을 보인保人이라 한다. 이 보인이 무엇인가 하면 해당 군적에 오른 사람의 뒤치닥거리를 하는 사람들이다.
조선시대 군바리는 자급자족이다. 관에서 공급하는 물자도 없다. 요새야 현역 군인도 월급 주고 밥 주고 장비 대주고 하지만, 조선시대는 그렇지 아니해서 닐리리 당나라 군대라, 지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현역으로 징집된 남편들 뒷바라지는 집에서 맨날 마누라 몫이었으니, 철마다 옷가지 지어 보내야 했다.
그렇게 일단 유사시에 징집되는 군바리들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 보인이다. 말 그대로 보완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번에 폐가 비름빡에서 발견한 수군 군적부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작성시기를 19세기로 보았거니와, 연구소가 이렇게 본 근거를 자세히 밝히지는 아니했으나, 이 폐가 들보에 적힌 상량문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묵서로 쓴 이 상량문에는 ‘도광(道光) 23년’이라는 문구가 확인된다.
이 경우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이것이 이 건물이 초축된 시기인가 중수된 시기인가를 확정하지는 못한다. 나중에 뜯어 고쳐 들보를 새로 올리면서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를 근거로 해당 군적 역시 적어도 이 시대 혹은 그 직전으로 보아 19세기라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한다. 도광 23년 1843년이다.
하지만 이를 도판으로 검토한 고문서 전문가 안승준은 18세기 후반, 구체로는 1780~90년대 정도에 작성한 문서라고 한다. 서체라든가 그 기재 양식, 특히 사람 이름에 특히 이두식 표현이 많은 점 등등을 근거로 든다. 요컨대 건물 건립연대와 고문서 연대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아무튼 이번 일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금언을 상기한다. 그래 폐가라 해서 귀신 나온다 피할 일 아니라, 그 비름빡에 무엇이 있는가 눈여겨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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