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65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9) 하늘을 쳐다본 산서성 고건축 기행 얼마 전 이상명이라는 사람이 명지대 대학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말인즉슨 조선 왕릉을 구성하는 건축물 중에서도 정자각에 초점을 맞춘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했다.그에 나 역시 관심이 지대한 까닭에 김군을 통해 문제의 논문 송부를 저자에게 부탁했다. 저자와 직접 인연이 없다 해서 그와 친한 듯이 보이는 김군에게 다리를 놓아 달라는 뜻으로 그리한 것이다. 며칠 뒤 저자 직접 사인이 붙은 학위 논문이 남영동 집으로 날아들었다. 그 증정 인사말에서 李君은 2004년 산서성 답사를 같이한 인연이 있다는 기억을 상기했다. 이군한테는 좀 미안했다. 그는 나를 기억하는데 내가 그를 기억하지 못했으니 실례도 이만저만이 아닌 셈이다. 다시 그 며칠 뒤,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 김현종 사장과 연희동 .. 2024. 9. 30. 국경을 탈출한 최몽룡의 남경 식탁 한 시간 장광설 이 양반이 고고학 현장에서 무수하게 남긴 일화야 두 말 해서 무엇하랴만, 개중 최몽룡표 전매특허가 장광설이라 이 양반은 국적 불문, 전공 불문 가리지 아니하고선 각종 회의 석상 같은 데서 일대 장광설을 펼치기로 유명한데, 문제는 이게 국경을 넘어서도 그랬다는 데 심각성이 있었다. 국내야 그런갑다 하고 말지만(난 이골이 나서 저 양반 마이크 잡는 순간 딴데로 틘다.) 국경을 탈출해서도 이런 모습이 펼쳐지는데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략 20년 전쯤, 선생을 모시고 남경 일대를 간 적 있다. 내가 자주 소개한 남경 손오대묘孫吳大墓가 발굴된 직후였으니, 그 현장도 돌아보고 했다. 당시 어떤 인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통역 겸해서 중국통 미술사학도(본래는 고고학도다) 양은경 부산대 교수가 동행했으니, 북경대 고.. 2024. 9. 28. 장사 마왕퇴 한묘漢墓와 최몽룡 중국 호남성 장사 마왕퇴 3호 한묘 中國 湖南省 長沙 馬王堆 3號 漢墓 현장이다. 2006년 9월 14일이다.바로 이곳에서 저 유명한 백서帛書 문헌이 무더기로 출토됐다.당시만 해도 현장은 슬레이트인가 양철 지붕만 씌워놓고 저런 상태였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어 곱게 단장했다고 들었다. 저곳을 찾을 날이 최몽룡 선생 회갑 때인가였다. 그 회갑 잔치 해준다며 주류성 최병식 사장이 선생을 모시고 장가게 일대를 돌았는데, 귀국하는 일정에 잠깐 짬을 내어 택시 대절해 급히 다녀온 곳이 저곳이다. 몽룡 선생은 한사코 예정에 없던 코스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안가겠다 버텼지만 막상 현장에 모셔다 놓으니 날아다녔으며 이후 주구장창 저 자료를 써먹더라. 사람 맘 갈대야. 저 양반 마왕퇴 현장은 첨으로 본 순간이었다. 2024. 9. 28. 공산성의 꼽사리들 2014년 9월 23일 공주 공산성 목곽고 발굴 현장이다. 습지에서 백제시대 목곽고 흔적이 나오고 그에서 진흙 잔뜩 머금은 칠갑옷 비늘이 잔뜩 쏟아졌다. 그 칠갑편들에서는 해서체로 아주 잘 쓴 글씨가 또 잔뜩 나왔는데 당 태종 이세민이 사용한 정관貞觀(627~649)이라는 연호가 나왔다. 그 칠갑옷을 백제산으로 볼 것이냐 중국산으로 볼 것이냐 논란이 벌어졌거니와 암튼 저때 발굴단은 공주대박물관, 발굴단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이남석 선생이었다. 그 현장 공개라 해서 당연히 관심이 많을 때 그날 어이한 셈인지 김충배가 찡가들었다. 저때는 LH에 근무할 때인데 무슨 핑계 대로 왔을 것이다. 그 춘배가 가운데 꼽사리로 끼어들어 기념 촬영을 했다. 당시 공주대에 재직 중이었나? 자신이 없는 이훈 선생이 함께 했으.. 2024. 9. 24.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5) 박물관 고고학의 대부 한병삼 한병삼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사람으로 적어도 지금의 한국 문화유산계에서는 무게감이 있는 역사상의 인물로 통한다. 이런 그와 나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1998년 12월 정기 인사에서 내가 사회부를 떠나 문화부에 안착했을 때, 이미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장직에서 물러난 지 한참이나 지난 뒤였거니와 그에 따라 그 또한 문화재위원이라든가 발굴현장에서 지도위원 같은 자격으로 더러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럴 적에 가끔 마주치는 정도였고,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어떠한 인상을 주지 못했을 것이 듯이, 그 또한 나에게는 퍽이나 인상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초창기 시절 내가 찍은 각종 발굴현장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2000년대 초반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가 조사한 원주 법천리 백제고분 발굴현장에 그의 모.. 2024. 8. 19.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0) 이영훈론(補) 부부 학예직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야 한다. 다만 이영훈은 가족 관계를 좀 덧보태어 놓아야겠다. 이건 말해도 되는 공적 영역의 사안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은 김연수다. 2016년 3월 현재 문화재청 국제교류협력과장으로 있다. 김연수는 남편과 같이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학예연구관까지 진급했다가 2005년 1월에 있은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 세 기관간 인력 교류에 따라 문화재청 산하 궁중유물전시관에 정착했다. 이 전시관은 나중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조직을 대대적으로 확대 개편한다. 이때 인사 교류한 연구직은 2년 안에 대부분 원대 복귀했지만, 김연수는 눌러앉아 이내 과장으로 진급해 여러 직책을 거쳤다. 그가 적을 옮길 때 이영훈은 학예연구실장 아니었나 하지만 확실히는 모르겠다. 다른 교류직과.. 2024. 8. 12. 이전 1 ··· 3 4 5 6 7 8 9 ··· 6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