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65 2001년 8월 9일, 나주 벌판에서 대형 독 가마가 출현하다 2001년 8월 9일 무렵 나는 전남과 광주에 있었다. 분명 출장이었는데 무슨 일로 그쪽을 갔는지는 도통 감이 안잡힌다. 내가 기억하는 단 한 가지는 나는 그날 나주 오량리 어떤 벌판에 서 있었다는 기억뿐이다. 그 현장엔 대옹大甕 파편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열나 두꺼워 살인도구로 사용될 법한 옹관 파편들에 경악했다. 현장은 묘지 조성한다고 포크레인이 껍데기를 홀라당 벗긴 상태였다. 가마터였다. 것도 초대형 옹관을 굽던 가마터였다. 영산강유역에서 주로 4~5세기에 집중 조성되는 독널 옹관묘甕棺墓 만들 때 쓰는 그 옹관. 하지만 그렇게 큰 옹관을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구웠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때까지 옹관 가마는 단 한 기도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했다. 이튿날 나는 초대형 옹관 가마.. 2024. 10. 10. writing vs. writing systems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영문 명칭은 보다시피 NATIONAL MUSEUM OF WORLD WRITING SYSTEMS 이다. natiinal과 world가 겹치는 문제가 있었으니 이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국립이냐 아니냐가 세우는 정부 쪽에서도 중요했고 받아들이는 쪽도 나름 민감하게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정작 논란이 좀 심했던 부분이 문자를 어찌 표기할 것이냐였다. 이를 결국은 writing systems라 낙착했는데 나는 systems를 빼자는 의견이었다. 무엇보다 거추장스러워지는 문제도 있었다. 다만 뺄 경우 writing라는 말이 지닌 중의성이 문제였다. 저 말 알다시피 문자라는 뜻도 있으나 글쓰기 전반, 특히 작가 전문박물관으로 비칠 우려가 없지 않았다. 반면 시스템즈가 되면 문자 체계라는 의미가 .. 2024. 10. 7.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5) 김영나 시대의 박물관(1) 초대 관장의 딸 이명박 정부가 반환점을 돈 2011년 2월 8일, 정부가 단행한 차관급 인사를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장 최광식은 서울에 있는 짐을 싸서 대전으로 옮겨갔다. 문화재청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 얼마 뒤 최광식은 다시 짐을 싸서 도로 상경한다. 이번에는 당시 서울과학관 뒤편에 임시로 쓰던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장관실로 말이다. 그가 떠난 박물관장실은 새 주인을 맞았다. 서울대 미술사학과 교수이면서 이 대학 박물관장을 역임하고 서양미술사를 가르치던 김영나가 온 것이다. 그의 관장 임명은 단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그가 장장 재임기간이 25년에 달하는 초대 국립박물관장 김재원의 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관장이 된 그는 박근혜 정부로 바뀌어서도 어찌된 셈인지 이렇다 할 만한 교체 움직임도 감지되지.. 2024. 10. 6. 어영부영 보내 버린 파주 혜음원지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그리고 그 후신이랄 수 있는 한백문화재연구원이 장기 연차 발굴을 벌인 파주 혜음원지는 왕립 호텔을 겸한 고려시대 사찰 갖춤 역원驛院 시설로는 실상 제대로 조사한 첫 고려시대 유적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의의를 둬야 한다. 이 발굴은 마침 내가 현역 시절이고, 더구나 그 시절 대부분 내가 문화재를 담당하던 시절이라, 발굴 연차마다 거의 빠짐없이 내가 직접 현장을 목도한 현장이라 더 각별하거니와 지금 현장은 보존정비가 실상 마무리되고 그 전면에는 전시교육관까지 들어선 마당이라 이제는 그 발굴하던 시절 여러 면모를 맛볼 수는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이 혜음원지 발굴은 저와 같은 점들에서 그 조사 내력과 그 발굴 성과를 총정리 혹은 집대성한 단행본이 두어 종은 이미 선보였어야 하고, 그 .. 2024. 10. 5.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1) 문화재청장 서정배 (1) 풍납토성과의 운명적 만남 한국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인 문화재청은 그 모태를 구황실재산사무국을 삼는다. 이 기구가 1962년 1월 10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시행되기 시작함으로써 문화재관리국으로 탈바꿈한다. 지금은 차관급 문화체육관광부 외청이지만 출범 당시는 지금의 교육부 전신인 문교부 산하 외국外局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궤를 같이한 문교부는 1990년 12월 26일 교육부로 개편되거니와 그것을 구성하는 국 단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현재에 견주어 권능은 형편 없었다. 초대 관리국장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역임한 한당욱. 문화재관리국은 1967년 7월 24일 소속이 문화공보부로 넘어간다. 이름은 그대로 문화재관리국이었다. 문화공보부에서 공보가 따로 독립하자 문화부에서 계속 자리를 지킨다. 내가 문화재 분.. 2024. 10. 4. 개똥 인분 천지였던 풍납토성 이 풍광이 지금은 또 바뀌었을 것으로 본다. 앞 사진은 아마 1999년 무렵 내가 촬영한 한 장면일 텐데 풍납토성 동벽 중앙지점이다. 보다시피 이때까지만 해도 이 지점은 묘목 밭이었다. 그 묘묙밭은 무허가였을 것이다. 당시 묘묙은 내 기억에 느티나무 종류였다. 저리 해 놓으니 성벽이 온통 개똥밭 인분밭이었다. 아산병원에 가까운 지점 성벽은 채소밭이었다. 이 역시 무허가였으니, 인근 주민들이 마음대로 파밭 깨밭으로 썼다. 문화재 때문에 못살겠다 했다. 그래 일정 부분 타당하리라, 하지만 꼭 문화재 때문이었는가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런 풍납토성이 그래도 변모를 거듭해 저와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래도 불만이다. 아예 문화재가 싫댄다. 그 문화재 때문에 없던 공원도 생기고 했는데도 싫댄다. 덮.. 2024. 9. 30. 이전 1 2 3 4 5 6 7 8 ··· 6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