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유물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아마도 비단 아닐까.
사실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유물에 대한 평을 다는 일이 필자로서는 조심스럽다.
비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매미 허물 같은 얇은 고도의 비단 옷이 나왔다던가,
상등품 비단에 그림을 그렸다던가, 글을 썼다던가,
이에 대한 문화적 가치에 대한 평은 필자가 내릴 수는 없다.
아마 김단장께서 좋은 글을 써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비단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필자도 이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지 않다.
인간의 사육한 동물 하면 대개 소, 말, 돼지 등을 연상하기 쉽지만,
곤충도 사육한 동물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그 대표적 사육곤충 하면 누에와 벌이 있다.
이 중 누에는 야생종인 누에 나방을 키워 여기서 비단실을 뽑게 되는데
사실 사육종인 누에 나방은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서
사람 힘을 빌지 않으면 번식도 불가능하며
날개는 있지만 날지도 못하는 단계에 접어 들어 소, 말 등 다른 사육 대동물과 비교하면
퇴화 정도가 매우 심하다 할 수 있다.
개가 늑대에서 분리되어 사육되기 시작한지가 확실한 증거로만 2만 5천년 (더 올라가 가능성도 있다)
그에 비해 아직도 늑대와 완전히 다른 종이 되지 못하고
때때로 야생종 개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사육종 누에 나방이 사람에게 의존하여 기본적인 생리현상까지 퇴화한 정도는 아주 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에 사육이 신석기시대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 이유는 누에의 생활사와 세대교체가 대동물보다 빨라
퇴화도 그만큼 빨리 일어난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각설하고-.
비단의 기원은 어디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논의가 있었다.
워낙 실크로드에 대한 인상이 강했던 터라 대체로 중국이 그 기원이라 생각하는 전통이 강했지만,
인도 같은 곳은 이에 불복하여 스스로를 비단의 종주국이라고 자임하는 논문도 나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 비단에 관련하여 실물 유물 만으로도 그 존재를 입증할 만한 것이
신석기시대까지도 올라가 중국이 그 기원지임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증거라는 것이 사실 누에를 묘사한 조각이나,
비단 실 조각, 옷 조각 등 파편이 대부분이라 필자가 아는 한 완벽한 형태의 비단옷은 마왕퇴 당시까지 그다지 많이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런 의미에서 마왕퇴에서 나온 비단옷과 백화, 백서 등 비단으로 만든 여러 유물은
전 세계 비단 제조의 종주국으로서 중국의 기술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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