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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전국 초묘 미라

[마왕퇴와 그 이웃-35] 청동기시대의 비단옷

by 신동훈 識 2025.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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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 백서帛書 중 태산서胎産書. 백서란 비단을 종이처럼 쓴 바탕을 말한다.

 
청동기시대 비단옷이라고 하면 대개 반응이 그 시대에 무슨 비단옷이라는 반응이 나오겠다. 

그런데-. 중국은 양잠해서 비단을 신석기시대에 했다.

용산문화기에는 이미 비단 생산이 완전히 정착했다고 하니까. 

농경이 본격화한 청동기시대에 양잠에 비단이라고 해도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솔까 우리가 신석기시대에 예컨대 비단옷을 걸쳤다한 들, 혹 늦잡아 청동기시대 걸쳤다한들 그게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양잠에 비단이라고 하면 요즘 보는 초고급 실크만 연상을 해서 그런데, 누에실로 짠 직물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우리나 일본의 경우는 농경 도입이 늦어 

중국의 신석기시대에 볼 수 있는 변화가 청동기시대에나 뚜렷이 나타난다는 시각이 학계에 있다는 점-. 잘 안다. 

다만 이런 부분은 한 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서기 3세기에 이미 바다건너 일본까지도 양잠에 비단은 보편화해 있었다.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其地無牛馬虎豹羊鵲. 
 
삼국지 동이전에 일본열도에 보편화한 양잠은 그렇다면 언제 건너간 것일까?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양잠은 한국과 일본에는 도작의 이동과 함께 전파되었다고 본다. 

한국과 일본은 동물 사육과 관련하여 중국에서 전달된 시기가 가축 종별로 천차만별인데,

소와 말이 매우 늦고 돼지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양잠은 소와 말보다 빨랐고 개인적으로 생각보다 상당히 이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것이 언제일까?

필자는 청동기시대 어느 시점을 한 번 주목해 볼 만할 것 같은데. 

청동기시대라 해도 그 시초부터 종말단계까지 많은 발전 변화의 단계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발전단계 어느 시점에 양잠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시기가 있을 것이라 보는데, 

필자의 경우 혹시 점토대토기 단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이전인 송국리문화 단계까지도 올려볼 수 있을까? 

이 점은 잘 모르겠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전한대에는 동아시아 일대에서 양잠과 비단 생산은 중국에만 있었던 모습은 아니라 할 것이다. 

각 문화권별로 그 비단의 질적 수준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보는데

전술한 소사단의素紗襌衣와 같은 옷은 아마 당시 중국에서나 가능했을 것이겠고

비단 옷이라 해도 한국이나 일본의 그것은 아무래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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