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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신석기농경이 농경 같이 보이는 순간

by 초야잠필 2024.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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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채집이 주요 생존 수단인 피그미 족. 그건 그렇고 저런 흔적이 훗날 고고학적 흔적으로 남을 가능성은? 없다.

 

한국은 신석기시대에는 농경이 없고 청동기시대에야 본격적으로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정설의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안다. 

물론 이런 주장도 최근에는 많이 바뀌어 신석기시대에도 초보적 농경이 시행되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들었다. 

왜 신석기시대 한국의 농경은 그렇게 미흡하게만 보이는 것일까? 

필자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시비 곧 거름이 없던 시대에 지력이 떨어지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시 지력이 떨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농사를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앞에서 이야기한 이런 "화전식 순환농경"은 소위 말하는 문명 중심지에서는 빨리 극복되거나 아예 경험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했던 것 같다. 

왜? 

그것이 바로 토지 비옥도의 차이다. 

 

사냥



주기적으로 범람하여 비료도 필요 없이 농경지를 덮어버리는 이집트나 황하유역 등지에서는 한국처럼 계속 순환하며 화전 경작해야 하는 시기를 빨리 벗어난 것 같다. 

한군데에 정착하여 인근의 경작지에서 농사짓는 시기로 빨리 진입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토지 비옥도가 떨어지고 척박한 한국의 경우 순환화전의 시기를 중국보다 더 오래 경과한 것 아닌가 싶다. 

필자가 보기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던 바 "부업 삼아 농사짓던 신석기시대의 농경"이 되겠다. 

신석기시대의 농경민은 파트타임이 아니라 전업 농경민이다. 

거듭 말하지만, 

조, 기장 농사가 시작되면 더 이상의 파트타임 농경이란 없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산에 올라가 나물 뜯고 꿩 사냥 나간 조선시대 농부들도 그렇게 친다면 파트타임 농부일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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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이 전도된 초기농경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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