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다닌 대학은 80년대에 이미 커리큘럼이 빡빡해서
도대체 휴강도 공강도 없고 시간표가 기계처럼 물려
여름방학 한달 겨울방학 두달을 빼고는 일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 시간 없이 돌아갔다.
아무리 빡빡한 스케줄이라도 사람은 살아야겠는지라
필자도 틈틈이 강의 땡땡이를 쳤는데
그때 주로 도망가 한숨 돌린 곳이 지금도 대학로에 있는 학림이라는 카페,
그리고 또 하나는 의대 도서관이었다.
2층에 올라가면 그때까지만 해도 전자도서관이란 게 없던 시대인지라
도서관 장서가 전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정말 여기 가면 별의별 책들이 다 있었다.
필자의 기억으로 대한제국시대까지 올라가는 의대 학술저널이 있는가 하면
의학사와 인문학 관련 책까지 있어 장서실에 들어가면
정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학술지도 해방 이전부터 그때 당시인 80년대까지 모든 권호가 다 모여있고
전공 단행본은 정말 없는 게 없었다.
여기서 틈틈이 본 책들은
필자에겐 지금도 대학시절의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최근 어느 박물관 도서실을 오래간만에 갔는데
여기는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곳으로
아는 사람들에게도 잘 가르쳐주지 않는 나름 비장의 장소였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로 많은 역사학 고고학 관련 학술지가
자유열람의 형식으로 마음대로 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가 없지 않을까
심지어는 필자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중앙도서관보다도 더 우월하다 생각하여
가끔씩 방문하여 여러 책을 보고 복사를 해오고
최신 학술지도 빨리 볼 수 있는 곳으로
이곳을 방문하면 마치 필자가 대학시절
빡센 스케줄 틈틈이 도망가 한숨 돌리던 도서관 2층 장서실을 다시 들리는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여기는 내가 공부를 계속하는 한은 이대로 계속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최근 방문해 보니 도서실 편제가 바뀌어
학술지 자유열람은 많이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전문서적의 개가식 열람이 격감한 것 같아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라 많이 실망했다.
아마도 그렇게 바뀐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고
원래 대로 유지하기 바란 건 필자만의 희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적어도 필자에게는 이제 그 박물관 도서실은
다른 여타 도서실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장점이던 개성을 상실한 듯 보였다.
과거 필자 대학에 있던 도서관도 그 2층의 장서실이 사라지면서
그 이후 필자는 전자도서관에서 논문만 열람하고
그 도서관으로의 발걸음은 완전히 끊어버리게 되었었는데
이 박물관 도서실도 아마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의 진화, 그것을 팽개친 역사가 무슨 역사리오? (3) | 2024.10.05 |
---|---|
역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 (3) | 2024.10.05 |
학술논문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글쓰기 (2) | 2024.10.03 |
전공도 아닌 동식물을 열심히 파는 이유 (2) | 2024.10.03 |
부북일기에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들 (3) | 2024.10.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