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경 필자의 첫 번째 학술논문이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320편 정도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펴냈는데
필자가 마음속에 담아둔 생각을 뜻대로 다 펴내서 쓴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심사를 거쳐 출판하다 보니 자기 검열 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으로,
심사에서 지적될 만한 근거가 완벽하지 않은 논리는 알아서 쓰지 않고,
그 와중에서도 조금 무리해서 글로 나간 것들은 예외없이 심사과정에서 삭제를 권유받아
출판을 하고 나면 논리적으로야 더 탄탄할지 모르겠지만
논문이 뼈다귀만 남고 살점은 다 뜯긴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논문이 수백 편이라고 한들 내놓을 수 없는 스토리 하나 변변히 짜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항상 아쉬웠다고 하겠다.
이제 60을 넘어서며 이 블로그에 선언하였듯이 학술논문보다는 단행본 위주의 글쓰기를 했다고 한 바,
그렇게 하고 나니 이제까지 쓰지 못한 스토리를 훨씬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비로소 나이 60에 이 나이에 맞게 해야 할 작업을 찾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총균쇠 같은 저작은 절대로 학술논문 쓰기로는 나올 수가 없다.
이런 학술저작은 논문과는 다른 것으로 딛고 있는 토대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이가 황혼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학술논문과 절연해야 하는 시점이 언젠가 인생에서 한 번은 반드시 온다는 점을 이야기 해두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렇게 학술논문과 절연한다고 해서 학문적 편력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술논문과 절연해야 비로소 보이는 지평선이 있기 마련인데, 이 지평선을 노인들은 너무 일찍 포기해버린다는 생각이다.
학술논문만이 학문적 탐구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이 점을 이야기 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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