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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조선시대 셜록 홈즈의 현실

by 초야잠필 202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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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살인사건 조사가 무원록이라는 책에 기반하여 

매우 합리적 해결을 독려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에 영향을 받은 극이나 영화들이 꽤 인기를 끌었다. 

이런 영화에서는 대개 매우 합리적 추리를 하는 조선의 선비가 셜록 홈즈같은 솜씨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설이나 영화는 과연 어느 정도로 사실에 접근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선시대 사망사건 조사는 검험관 임의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한 것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증언과 검시 결과, 무원록의 기술 세 가지가
모두 하나의 결론을 가리켜야 사건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치밀한 논리 전개로 살인사건이 규명된 경우도 드물긴 하지만 있다. 

살인을 엄폐하려 한 시도를 검험관이 뒤집어 진범을 잡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조선의 사법제도는 요즘과 별 차이 없이 합리적 수사가 이루어지던 사회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냉엄하였으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합리적으로 조사하고자 하였으나-. 기술이 따라가지 못한 한계가 확실했다고 할 수 있다. 

무원록에 쓰여 있는 살인사건 조사기법을 보면 오늘날의 법의학에서 볼 때도 놀라운 부분도 있지만 허무맹랑한 부분도 있다. 

또 대부분의 조사는 부검은 생략되고 육안상으로 겉 모습의 이상만 확인하기 때문에 사망의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사또가 합리적으로 추리하려 해도 기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니, 

결국 이상과 현실의 갭은 고문과 매질, 주리틀기로 채웠을 것이라 본다. 

다산의 흠흠신서 역시 비슷한데 아무리 좋은 소리를 써 봐야 법의학적 수사 기법 자체가 그 정도 수준을 가지고는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자고 한들 그게 가능할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조선후기의 사법제도, 무원록에 기반한 수사기법은 놀라운 부분도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특히 실제 이를 적용한 양상은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조선시대의 범죄 수사처럼 우아한 것이 아니었음은 자명한데, 

그렇게 결국 범죄수사가 한편으로 주리 틀기를 옆에 두지 않고는 마무리가 안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수사기법의 한계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조선시대 셜록홈즈는 한참 열심히 추리하다가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면

그때부터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는 두들겨 패면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갔을 것이다. 

한 손에는 무원록을 다른 한 손에는 매를 든 모습이 조선시대 검험관의 모습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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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는 범인도 범인이라 하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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