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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무령왕릉 발견 50주년의 폭탄 선언 "관짝에 바닥이 없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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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직설 무령왕릉(메디치미디어)을 내면서 나는 내심 무령왕릉은 향후 10년 간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고 봤다.

그만큼 나로서는 회심작이었고, 그만큼 자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무렵까지 내가 생각하는 내 미답이기도 하면서 학계 전반하는 미답으로 남겨둔 게 두어 가지 있었으니

개중 하나가 그 묘권墓券 중에서도 매지권買地券이라 일컫는 그 문건이었으니,

이 문건은 글자 그대로 무령왕이 죽어서 지하 세계로 들어가면서 그 묘지로 쓸 땅을 돈을 주고 매입했다는 문건이려니와 

계약 당사자로 등단하는 지하세계 귀신들이었으니,

이건 실은 내가 못 푼 것이 아니라 이후 과제로 남겨두었거니와,

이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청귀율女靑鬼律을 필두로 하는 위진남북조시대 도교 의례서를 뒤져야 하는데,

그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지 못해 그만 욕심내자 해서 묵혀둔 것이다. 

저 졸저에서 내가 회심작이라 생각하는 대목이 나로서는 많다.

개중 하나가 지금의 무령왕릉은 애초 생각한 본 무덤이 아니라 실은 빈전 혹은 빈소 개념이라 했거니와,

그래서 왕이나 왕비 모두 머리를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두었고,

남녀 위치도 뒤바뀌었다는 대목이었다. 

동아시아 상장의례에는 두 가지 죽음이 있다.

첫째 생물학적인 죽음과 둘째 상징으로서의 죽음이 그것이라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완전한 죽음이 비로소 성립한다.

이 생물학적 죽음과 상징 죽음 사이에 낀 기간을 빈기殯期라 하겠거니와,

이 기간에는 죽은 사람도 산 사람으로 쳤다. 

그래서 산 사람처럼 머리를 남쪽으로 두었고, 남녀 위치도 죽어서는 부좌祔左라 해서 여자는 남편 기준 왼쪽으로 가야하지만, 산 사람이 그렇듯이 그 위치가 반대가 되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 지금의 무령왕릉은 딱 살아있는 사람 그 기준이다.

죽어 있는 사람 기준이 아니다.

그냥 빈소를 그대로 쑤셔박아서 무덤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빈전에서는 정칙이라, 저 무덤은 죽은 사람 무덤이 아니라 실은 살아있을 때 생전 모습이다. 

한데 졸저가 나오고 몇 년이 지나 나랑 같은 김녕김문 김규동 선생이 느닷없는 주장을 들고 나왔으니

평소 공부라고는 별로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가 어찌하여 이 주장을 들고 나왔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거니와,

직전까지 공주박물관 근무 경험을 토대로 한 데서 비롯한 듯한데 암튼 느닷없이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에 즈음해 국립공주박물관이 개최한 그 기념 학술대회 '무령왕릉을 다시 보다'에서 '무령왕릉 상장례喪葬禮 절차'라는 발표문을 들고 나와 새로운 주장을 일삼았으니,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장으로 있지마는 듣자니 올 연말에는 정년 퇴임 앞두고 1년 공로연수에 들어간다는 이 퇴물 학예직께서 당시 주장하기를

"왕과 왕비 목관 모두에서 바닥판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출토 유물 재확인 결과와 관의 목재·부속 용구에 대한 설명을 담은 신보고서도 바닥판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폭탄선언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저 논문이 나온지 4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저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음미조차 되지 못하는 듯한데, 저건 폭탄 맞다.

물론 그렇게 주장한 김규동 본인도 내 기준에서는 제대로 의미 부여를 하지 못한 감이 없지는 않다. 

저 주장을 음미하기 위해선

첫째, 저 주장이 맞는가?

다시 말해 진짜로 무령왕 부부를 합장한 저 무덤에서 무령왕과 그 왕비 목관에는 바닥판이 없는가?

이를 확인해야 하며

둘째 그것이 초래하는 폭탄은 무엇인가? 를 이제는 씹어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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