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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외치 이야기55

[외치이야기-21] 문신과 침술 이런 부분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고 의학적 견지에서 접근한 외치 연구는 별의별 것을 다 밝혀냈다. 혈액형은 물론이고 DNA분석 (요즘 그 동네 사는 사람과 비슷한 유전형이라 한다), 식생활분석 (마지막 저녁식사를 뭘 먹었는가까지 위의 내용물을 분석해 밝혀내었다)까지..., 한편 외치 피부를 검사한 연구자는 그의 피부에 문신이 남아 있는 것도 확인하고 보고하였다. 이 문신을 연구한 사람들 중에는 외치의 문신이 의료용 목적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다시 말해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믿어지는 침술의 시술 위치와 거의 일치한다고 본다는 것이다.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침술은 원래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전 세계에 퍼져 있던 것으로 중국에만 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물론 중국인들은 이런 주장에 결사 반대이지만. 말하.. 2025. 1. 29.
[외치이야기-17] 미라의 저주? - 2 미라의 저주는 외치의 경우에도 유명하다.외치의 발견 및 조사와 관련된 7명이 짧은 기간 동안 모두 비명에 사망했기 때문이다.이를 외치의 저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간단히 살펴보자. 참고로 외치가 발견된 것은 1991년이다.   • Rainer Henn. 64세에 사망. 인스부르크대 법의병리학자. 당시 외치를 조사하던 책임자였다. 초기의 외치 연구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학회 참석차 이동 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 (1992년). • Kurt Fritz, 52세에 사망. 산악가이드. 외치가 발견되었을 때 얼굴을 처음 확인한 사람이라고 한다. 외치를 알프스 산에서 헬리콥터로 들어 내리는 작업과 관련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눈사태로 사망 (1993년).  • Rainer Hölz, 47세에 사망. 외치가 발견 당시.. 2025. 1. 29.
[외치이야기-16] 미라의 저주? - 1 외치가 순동시대 사람임을 처음 밝힌 콘라드 스핀들러는 비교적 일찍 사망하였다 (2005년).그의 죽음을 미라의 저주와 연관시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도 사실 이 일을 하다 보면 꼭 미라의 저주 이야기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글쎄. 필자의 기억으로는 지금까지는 미라의 저주라고 부를 만한 일이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것 같다.하지만 미라 보고가 워낙 센세이셔널 한 뉴스이다 보니미라와 관련된 언론 보도가 나가는 날은 하루종일 뭔가 뒤숭숭한 것은 사실이다.미라의 저주는 서구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거리이다. 아마도 미라의 저주에 관련하여 가장 처음 나온 이야기는 투탕카멘 왕릉을 발굴한 카터 발굴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카터 발굴단 사람들은 발굴 직후 비명에 간 사람이 꽤 있다.이를 호사가들은.. 2025. 1. 29.
[외치이야기-15] 사기극 소동 외치와 관련하여 잊지 못할 일은 이른바 “가짜 미라” 소동이었다. 외치의 발견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자 어느 언론사 모 기자는 느닷없이 외치는 사실은 이집트 미라인데 명예와 부를 탐한 사람들이 알프스 산 꼭대기에 이를 옮겨 놓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리고 그 근거의 하나로 “왜 하필 저 유명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그 부근을 그날 어슬렁 거리고 있었는가.메스너가 다른 사람들과 짜고 이집트 미라 하나 산꼭대기로 옮겨 놓은거 아닌가”라는 주장을 했다.  메스너야말로 외치 발견사에서 가장 초연한 입장에 있었던 사람의 하나인데 느닷없이 유탄을 맞은 것이다. 메스너로서는 황당 무계하고 억울한 사건이겠지만 어쩌면 이 사건으로 그는 외치의 저주를 액땜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메스너와 함께 이 주장으로 맘 고생을.. 2025. 1. 29.
[외치이야기-14] 불거지는 소송 외치가 처음 발견되어 인스부르크로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이 발견이 순동시대 미라를 발견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이 사건은 평범한 조난자에 대한 사망조사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이 사건이 무려 5천년 전 미라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건이 터졌다. 그 중 몇 가지 이야기만 해보자.  우선 외치가 유럽 순동시대 미라라는 것이 알려진 후 이 미라가 실제로 엄청난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 후 많은 분쟁이 뒤따랐다.이 미라를 처음 발견한 독일인 부부는 죽을 때까지 미라를 발견한 보상금에 대한 소송으로 세월을 보냈다.  미라를 처음 운반해 간 북 티롤과 남 티롤 지역도 외치 소유권 문제를 놓고 한판 싸움을 벌였다.남티롤 지역 주장은.. 2025. 1. 28.
[외치이야기-13] 순동시대의 유물을 발견하다 인스부르크 대학으로 옮겨진 외치Ötzi는 곧 이 대학 연구진의 조사를 받았다. 이 당시 찍힌 사진을 보면 여느 법의학적 변사자에 대한 조사와 거의 비슷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장소는 평범한 대학 부검실인듯 하고 변사자의 사망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사를 받아야 할 터였다.   인스부르크 대학에 옮긴 시신은 곧 이 대학 연구자들이 조사할 기회도 갖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이 케이스가 단순한 법의학 케이스가 아닐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이때 이 대학 고고학부 교수 콘라드 스핀들러 (Konrad Spindler)는시신과 함께 발견되어 운반된 유물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때 특히 그는 외치가 발견된 곳에서 함께 수습한 유물 중 순동 도끼를 보고 놀랐다.   자신이 아는 한 이런 종류의 유.. 2025.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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