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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태동하는 시기
대개는 관찰의 수준이 올라가는 데서 과학적 사유가 시작된다.
과학혁명의 첫발이
해부학과 천문학에서 시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체에 대한 관찰과
천체에 대한 관찰 기록
이것이 곧 근대과학을 만드는 첫발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어떤 사회의 과학적 사유의 맹아를 보고자 한다면
그 사회의 관찰 수준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과학적 사유의 수준을 보려면
최한기가 지동설을 알았네 아니네
이런 것은 과학적 사유와 아무 상관도 없다.
세계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네 아니네
이런 것은 과학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말이다.
이보다는 과학적 사유의 첫발이라 할
관찰과 기록의 풍조가 식자들 사이에 일어나는가
이것이 근대과학의 태동에 있어 훨씬 중요하다.
관찰기록 하나 없이 하늘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더라?
이건 안타깝지만 근대 과학의 맹아가 아니다.
근대과학은 최소한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
서양에서 전래한 해부학책을 보고
직접 막부의 죄수 해부에 참가해서 보았더니
그 책과 똑같은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18세기 일본 전통 의학자의 고백.
이런 것이 있어야 그 사회에서
근대과학의 첫발을 떼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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