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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광개토왕의 남정이 사서에서 빠진 경위

by 초야잠필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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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는 김부식이 손을 많이 댔다기 보다, 

전해 내려오는 고구려 사료를 많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고구려본기 앞부분은 신집의 내용을 그대로 받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나 보다. 

그런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조 기록을 보면, 

전술한 바와 같이 광개토왕의 남정기사, 

백제 아신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사실,

신라의 요청으로 출병한 사실, 

왜병을 신라영토에서 구축하고 가야까지 쫒아갔다는 사실 등 일련의 기록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백제와의 기록이 전무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남정기사 이전의 기록은 매우 상세하다. 

그렇다면-. 

광개토왕비에는 있었던 남정기사가 언제 기록에서 누락되기 시작했을까. 

이를 추정해 보면, 첫 번째는 고구려의 역사서인 신집 편찬과정에서 빠졌을 가능성이다. 

이렇게 본다면 고구려는 모종의 이유로 광개토왕의 남정기사는 취신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다음으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 당시까지도 그 편린이 남아 있었는데, 

김부식이 어떤 이유로 이를 고구려본기에서 뺐을 가능성도 있겠다. 

이 경우라면 김부식이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의 사료에서 확인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뺐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일단 기록하고 자기의 생각을 적어두는 김부식 스타일을 생각하면

자기 맘대로 이 엄청난 기록을 빼버렸을지 의심이 있다. 

결국 남은 가능성이라면, 신집의 편찬과정에서 아예 빠져버렸을 가능성인데, 

이 경우라면 광개토왕 남정기사는 고구려의 정치군사적 프로파간다로 그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잊으면 안되는 부분은, 

이 광개토왕의 남정기사는 그냥 누락되기에는

내용 자체가 워낙 엄중해서, 

만약 이 사실이 호태왕비에 기록된 것 그대로의 사실이었다면 주변국 사서에 그 흔적도 없이 남지 않았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필자는 광개토왕 당시에 뭔가 이렇게 크게 떠들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호태왕비에 기록된 그대로는 아닐 것이라 본다. 

일단 호태왕비는 신묘년조나 아니면 동부여 관련 조에서, 

백제, 신라, 동부여 등은 옛날부터 우리의 속민이라고 선언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것 자체가 아무 근거도 없는 이야기라, 

그 이후의 이야기 전개도 백프로 취신하기는 쉽지 않을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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