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누차 여기에 쓴 것 같지만,
일제시대 연구 논문 중에
일단 욕부터 하고 보자는 의도가 너무 눈에 띄는데 반해
정작 내용은 별것 없는 논문이 상당히 많다.
욕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사실 학술논문에서 욕부터 나와서 될 일인가 하는 점은 있겠다),
내용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일제시대 연구에서 중요한 점은
당시 식민통치가 얼마나 잔학했는가를 밝히는 부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식민통치의 시스템을 정확히 밝히는 데 있다 하겠다.
일본의 통치는 1차대전 이후에는 이미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방식으로,
즉자적이고 임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설사 수탈이라 하더라도 법령에 의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1차대전 이후의 일본의 식민통치를 규명하는 데는
일본과 조선을 묶는 시스템의 정확한 이해와 규명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조선인은 식민통치의 후반까지도
일본제국의 삼류 시민 위치로 대부분 전락했는데,
이는 당시 식민당국의 임의적인 처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통치 시스템에 의해
총독부는 손 하나 까딱않고도 조선인 대부분을 일용노동자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는 점-.
이것을 밝히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일제시대 연구는
아직도 목소리는 높은데 내용이 없다.
식민통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일본제국주의 자체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매우 낮다.
식민통치가 어떤 정책선상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그 시스템이 작동하면 왜 조선인들이 집단적으로 하류층으로 굴러떨어지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첫 번째 해야 할 작업은
식민시대 연구에 있어 감정부터 좀 자제하는 것이다.
수준 높은 연구의 가장 큰 적은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다.
어느 분야 연구나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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