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부분은-.
삼국사기의 광개토왕 기사는
영락 6년의 백제토벌 이전의 백제와의 싸움,
그리고 연나라[후연]와의 싸움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광개토왕비에는 연나라와의 싸움이 거의 기록이 되어있지 않고
반면에 삼국사기에는 없는 한반도 남정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호태왕비는 서로간에
교집합부분이 크지 않고 별개의 사건을 각각 적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필자 생각으로는
광개토왕비가 세워지던 당시까지도
호태왕이 싸웠던 연이 그대로 존립하고 있었던 부분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말해
이 부분에 있어서도 광개토왕비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직필한 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정치군사적 상황을 많이 감안한 기록이라는 김단장의 의견에 공감한다.
광개토왕비문이 객관적인 사서에 준하는 기록물이었다면,
비문에는 당연히 연나라와의 싸움이 많이 기록되어야 했을 것인데,
호태왕비 건립 당시
고구려로서는 연과의 싸움을 있는 그대로 적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비문에서 정작 이 부분은 빠지고,
오히려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국사기에서는 빠져버린 남정기사가 장황히 기록되었다는 점.
이런 점도 광개토왕비문이 가지고 있는 모종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광개토왕 기록은
고구려로서도 시간이 많이 경과하여 광개토왕 당시의 사건을 달리 보게 되었던
그런 시각을 반영한 기록일지 모른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원문이 되는 기록이 쓰여지던 (아마도 신집?) 시대가 되면
북연과의 전쟁도 사실 그대로 쓸 수 있었을 것이며,
남정기사도 좀 더 객관적으로 보아
관련 기록이 크게 축소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사실 신집이 집필 되던 시기에는
이미 장수왕이 한성백제를 소멸시킨 때라
굳이 광개토왕의 남정기사를 대대적으로 무리하게 선전할 필요가 없어진 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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