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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구한말의 가축: 있는 그대로 보고 이유를 찾아라

by 초야잠필 2024.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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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썼지만,

구한말 가축을 보면, 

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외국인이 찬상한다. 

유순하고 힘이 좋고 말도 잘 듣는다.

몸도 크다. 농사소로는 최고다. 

은 이구동성으로 조랑말이라 한다. 

성격은 좋지 않다.

놔두면 마굿간에서 자기들끼리도 싸우고 

수틀리면 마부 말도 안듣는다.

그런데 적게 먹어도 멀리간다. 

여물도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는 경우가 있다. 

놔 주면 알아서 주변에서 먹고 온다.

힘도 좋다. 

돼지는 작다. 먹을 것도 없다. 까맣다. 

성장도 느리다. 왜 키우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숫자도 많지 않아 한 집에 한두 마리 정도다. 

돼지는 일제에 의해 무쓸모의 열등 종자로 공격받은 대표적 토종 가축이다. 

은 알을 많이 낳지 못한다. 

그래도 키운다.

들에는 꿩이 많아 닭고기 대신 꿩고기를 더 많이 먹고 

실제로 구한말, 꿩이 닭보다 더 쌌다. 

한 번 사냥 나가면 백 마리씩 잡아오는 것이 예사였고 

산길을 가다보면 사방에서 날라들어 쫒아내면서 가는 것이 일이었다고 한다. 

는 알다시피 애완용이 아니다. 

한국의 개는 육고기 용이었다. 

이 때문에-. 

국치를 겪은 후 한반도 가축은 소를 제외하고는 (소도 품종 정비가 이루어졌다)

모두 해외 품종으로 바뀌었다. 

말은 알다시피 제주도나 가야 원래 있던 조랑말을 본다. 

닭은 지금 알 낳고 닭고기를 주는 품종 중 원래 토종닭은 당연히 없고, 

지금 토종닭이라고 선전하는 것도 백프로 20세기 이전의 그것일지 모르겠다. 

돼지는 완전히 박멸 대상이었다.

지금 한국의 토종돼지는 뜻한 바 있어 키우시는 농가의 몇 백두가 전부로 안다. 

개? 지금 시고르자브종 중에는 토종 개의 피가 흐를 것이다.

하지만 애완견 열풍에 토종개가 끼어들 자리는 거의 없다. 

오히려 토종개는 2024년 현재까지도 유지되는 식용개 피를 타고 내려갔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20세기 이전 우리 조상들이 키우던 사육 동물들의 열등함을 목격한다. 

자존심이 강한 글들 중에는 
그게 아니고 우리 토종 가축의 우월함을 애써 선전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팩트는 팩트다. 

애써 이를 그렇게 강변할 필요 있을까. 

하지만 문제는-. 

일견해서 열등해 보이는 이 조선의 토종 동물들 (소를 제외하고)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어 그렇게 유지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돼지-. 애초에 고기 먹을 용도로 키우지 않았다. 

돼지 비육종이 도입되어도 돼지를 먹일 사료가 넉넉하지 않은 판이라
작게 키우는 것이 맞았다고 본다.

20세기 이전 한국의 돼지는 비료 생산용이다. 

비육용이 아니라. 

남는 음식 찌꺼기나 심지어는 인분 등으로 키우며 비료 생산을 하다가 

나이가 너무 먹으면 동네에서 추렴으로 잡아 같이 먹던, 
그것이 토종돼지다. 

말-. 아라비아산 폼나는 말을 키워 봐야 

도로사정이 열악해서 달릴 수가 없다. 

말 건초 마련도 어렵다.

따라서 차라리 조랑말이 낫다. 

많이 안 먹어도 멀리가며 열악한 도로도 갈 수 있다. 

성질이 좋지 않지만 그것만 참으면 된다. 

요약하면, 

이렇게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유지되던 토종 동물들이 

20세기 들면서 기존에 유지되던 이유를 모두 상실해 버리니

졸지에 열등 종자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돼지와 닭은 비육생산용이 되어 사료를 퍼먹이고 고기를 대량생산해야 하게 되었다. 

말은 운반용으로도, 군사용으로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제주도 조랑말 경기장에서만 살아남게 되었다. 

개는 비육용으로 최근까지도 존립의 이유를 인정받던 토종 가축이다.

특히 개를 즐기는 분들은 "먹는 개는 따로 있다"라는 논리를 최근까지도 유지했다.

먹는개란 무엇일까?

아마도 토종 개 비스무리한 "시고르자브종"을 말하는 것일 테니.

그 안에는 전부는 아니겠지만 토종 개의 형질이 상당히 전해져 내려갔을 것이다. 

구한말의 가축은 지금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확실히 대부분 열등 종자처럼 보인다. 

이것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20세기 이전 한국사회의 상황을 볼 때 구한말의 가축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필자 생각은 몇 번 기록만 조사하면 다 나오는 

20세기 이전 토종 가축 현실을 애써 부인하면서 우리 자존심을 지킬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이를 인정하면서 

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는 것이 더 맞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구한말-., 

사람 먹을 것도 없는 판에 

가축들이 폼나고 번지르르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그거야 말로 맹자가 말한 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 먹게 한다(率獸食人)는 바로 그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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