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래가 미라 부검을 사실상 재가를 한 시점이 12월 10일이었는데, 부검을 위한 준비는 1972년 12월 11일 개시되었다.
이 당시 부검이 얼마나 신속하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부검 전에 먼저 X ray를 찍고 사진과 영화를 촬영했다.
12월 14일에는 해부를 진행할 인원이 확정되었고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고 한 다음
당일 바로 부검에 들어갔다.
주은래가 재가 한 후 3일만의 일이었다.
부검 때 관찰 기록은 현재도 자세하게 남아 있다.
그 내용을 여기 다 쓸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 당시 마왕퇴 부검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미라에 대해 비슷한 연구를 수행한 필자의 경험상
매우 비슷한 결과를 그들이 얻었다고 판단한다.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미라의 보존상태와
마왕퇴 미라의 보존상태는 거의 방불하다는 뜻이 되겠다.
당시에는 CT를 찍지 못하고 X ray 촬영만 한 후 부검에 들어갔으므로
내부에 어떤 장기가 남아 있는지 거의 모르고 들어갔던 것 같다.
조선시대 미라가 조사되던 당시에는 이미 CT촬영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우리의 경우에는 부검이 시행되는 경우에도 내부에 어떤 장기가 남아 있는지 거의 알고 접근할 수 있었다.
7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마왕퇴 미라 조사와
2000년대 초반부터 이루어진 조선시대 미라 조사는 약 30년의 차이가 있는데
이 사이에 CT의 발전, 고대 DNA 연구 기법의 확립 등
과학기술의 눈부신 성장이 있었다.
만약 마왕퇴 미라가 2000년대 이후에 발견되었다면
아마 대단한 정보가 훨씬 많이 축적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으니만큼
이들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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