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퇴 미라의 부검과 의학적 조사가 진행된 후,
이제 이 미라가 도대체 어떻게 이천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썩지 않고 보존되었는지
여기에 대해 답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라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관을 채우고 있던 액체에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정상적으로 존재하기 힘들 정도로 잘 보존된 미라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힘들며
어떤 방식이건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마왕퇴에 대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도 남아 있어서
관을 채우고 있던 액체안에 포함된 수은이 미라와 유기 유물의 보존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수은은 지금도 보존제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의견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이 미라가 인공적인 방부처리 때문에 형성되었다는 생각은
점차 희석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연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작성되었을 신화사의 마왕퇴 관련 보도를 보면,
연구 종료의 즈음에는 이미 시신이 잘 보존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기장 기본적인 원인은 "잘 밀봉되고 깊이 매장되어 오랜 기간 산소부족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더 써보면 관 속 액체에서 탐지된 수은 화합물이 어떤 역할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연적인 조건이야말로 미라를 형성시킨 근본적 원인이라는 설명으로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이렇다.
마왕퇴 한묘의 관이 시신을 잘 보존할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시신이 입관되어 봉해진 뒤 밀폐된 상태에서 관속에 어려겹의 옷으로 시신이 둘러싸여
관내부에 남아 있는 공기가 매우 적었다.
또 시신의 초기 부패과정과 관 내부 물질의 산화를 통해 관속의 산소가 완전히 소모되어
산소결핍 조건을 형성하였다.
관 내부에 산소결핍 조건이 형성되자 부패균 중에서 산소가 필요한 세균이 점차 죽고
혐기성 세균은 살아남아 번식했다.
하지만 이윽고 시신의 단백질, 지방 등이 계속 분해되어 수많은 유기산이 형성되어
관 내부가 산성이 되어버리자 부패균도 혐기성 세균도 모두 죽어버리게 되었다.
이로써 시신의 부패는 결국 안전히 정지하게 되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서 전국시대까지는 관을 깊이 묻는 것을 가장 중시했다.
신분이 높을 수록 구덩이가 깊고 컸으며
공기가 통할수 없게 만들었다.
마왕퇴 1호묘는 무덤입구에서 바닥까지 무려 16미터나 된다.
무덤위의 봉토까지 합하면 20미터이다.
묘실 둘레에는 백고니로 모두 막아 놓았다.
이는 점성이 좋아서 내부를 효과적으로 밀폐했다.
백고니 두께는 무덤 부장품의 보존 정도와 정비례하는 것이다.
백고니가 없으면 내부의 관속 유기물은 모두 썩어 없어진다.
이전에 발굴된 전국 초묘, 서한 무덤에서 백고니로 밀봉되지 않은 경우 내부는 전부 썩어 없어졌다.
마왕퇴 무덤의 경우 두텁게 쌓은 백고니 위를 다시 흙을 단단하게 채워 다졌다.
이렇게 잘 다져진 흙과 백고니는 지면의 대기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밀폐 시켜 놓으면 호기성, 혐기성 균 모두 다 죽어버린다.
놀랍지 않은가?
이후 글에서 쓰겠지만 마왕퇴 연구자들이 도달한 미라화 원인은
조선시대 무덤에서 우리가 밝혀낸 이유와도 거의 일치한다.
우리보다도 무려 30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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