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제 우리 칼끝은 저 그림을 누가 그리기 시작했느냐로 향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그림이 완성 혹은 제기되기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
우리는 왜 거기로 돌아가야 하는가?
일단 저리 그리기 시작한 그림,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그 이후 전개하는 모든 관련하는 논의를 거기로 구속 제한하는 까닭이다.

일단 저리 완성한 그림은 모든 논의를 저에 끼워맞추어 쳇바퀴를 돌리게 된다.
블랙홀이다.
그런 쳇바퀴는 마침내 저 방식을 증명하는 모든 노력으로 귀결하게 되거니와
나락 몇 포기 짤라보고선 그래 맞네?
하는 안도 혹은 확인을 초래했으니
이 모든 논의를 우리는 암흑으로 돌려야 한다.
그리하여 저들이 출현했을 당시,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일꼬? 를 고민하는 바로 그 지점으로 우리는 다시 가야 한다.
거기서 우리는 새로 물어야 한다.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일꼬?
벼 몇 포기 짤라서 베어지고, 뜯긴다고 그 전제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저 그림은 저것이 그렸을지도 모르는 무수한 다른 그림을 말살했다.
저에서 해방하는 날이 반달모양돌칼이 새로 서는 날이다.
인류 문명사 한 위대한 변곡적으로 우리는 저를 relocation해야 한다.
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국으로 치닫는 반달모양돌칼 (1) | 2025.03.05 |
---|---|
구멍 하나를 뚫은 중국 신석기 돌칼 (1) | 2025.03.05 |
나무 손잡이 찡가서 쓴 유럽 신석기 돌칼 (0) | 2025.03.05 |
자작나무 타르로 손잡이 본드칠한 신석기 돌칼 (1) | 2025.03.05 |
[무령왕릉] 냉침대를 좋아한 왕과 왕비 (0) | 2025.03.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