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곡농경은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는 잡곡농경이라고 부르지만 잡곡농경권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무거나 되는 대로 재배해서 닥치는대로 입에 쳐넣던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동아시아 잡곡문명권의 주곡은 조와 기장,
그 중에서도 하나만 꼽자면 기장이다.
따라서 잡곡농경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서직농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본다.
기장이라는 곡식을 우습게 보는데 한 번만 쪄서 먹어보면 그 단맛에 이 곡식을 우습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기장은 맛이 옥수수와 비슷하다.
쪄 내면 옥수수 향이 난다.
잡곡농경은 되는 대로 아무거나 심어 닥치는 대로 수확해 먹고 사는 그런 화전민 농업이 아니다.
기장을 주력으로 하고 다른 곡식과 채소를 보조적으로 재배하는, 따지고 보면 도작과 별 차이도 없는 농경사회이다.
이 때문에 화북에서는 기장을 중심으로 한 황하문명이 꽃피고 장강유역에서는 도작 문명이 자라난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략 평양 일대에서 요동반도 남단 일대가 도작의 북방한계선으로
그보다 북쪽 지역, 만주일대와 요하유역은 모두 잡곡지역이다.
따라서 황하유역처럼 이 지역은 잡곡문명이며
초기 고조선 (이동설이 맞다면), 부여, 고구려는 모두 잡곡문명에서 일어났다.
중국이 황하유역과 장강유역이 각각 잡곡문명과 도작 문명을 대표하듯이
한국 역시 부여-고구려와 한반도 남부가 각각 잡곡문명과 도작문명을 대표한다.
거듭 거듭 말하지만 잡곡문명에 대한 우리의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잡곡농경은 초기적, 미성숙한 농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완성된 농경이며 문명이다.
황하문명을 잡곡 농경에 대한 이해 없이 파악이 불가능하듯이
초기 고조선, 고구려, 백제 역시 잡곡문명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해 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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