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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하라고고연구소 사쿠라이 차우스야마 고분 桜井茶臼山古墳 특별전 일본국 나라현립奈良県立 가시하라고고연구소橿原考古学研究所가 2025 영화令和 7년도 봄 특별전 "왕릉 사쿠라이 차우스야마 고분 王陵 桜井茶臼山古墳"을 4월 19일 개막해 6월 15일까지 개최한다.사쿠라이 차우스 야마 고분 桜井茶臼山古墳은 총 길이 200미터가 넘는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으로 그에 대한 최근 발굴조사에서 총 103매에 달하는 청동거울이 수습됐다.야마토 왕국 왕실 묘 중 하나로 여겨지며, 장례품이 명확한 왕실 무덤임을 드러내는 귀중한 사례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에 대한 최신 발굴 연구성과와 더불어 초기 고분기를 대표하는 관련 자료와 비교하는 자리도 마련한다.저 고분 발굴에 대해서는 아래에 자세히 소개했으므로 대체한다.  구리거울 파편 쪼가리 385점으로 재구성하는 야마대국 대왕 구리거울 파편 .. 2025. 4. 4.
고고학 전공자만 디립다 뽑는 국립지방연구소 나는 계속해서 작금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특히 그 지방분소가 문화재행정이 아니라 실은 발굴만 디립다 하고 자빠졌다 비판하거니와, 그 지방연구소는 국립지방고고학연구소가 아니며, 실제 아니어야 함을 계속 주창하거니와, 그 존재 근거 어디를 봐도 문화재 행정 전반이지 지들더러 누가 발굴만 하라 했던가?함에도 이번 2025 국가유산청 채용공고를 보면 8명 학예연구사를 전공별로 보면 개중 3명이나 고고학에 치중해 있으며, 그 고고학 전공 학예사가 필요하다 해서 뽑아올린 데가 보면 모조리 저 산하 지방연구소라, 구체로 보면 나주 서울 완주문화유산연구소다.왜 지들이 고고학만 뽑는단 말인가?저러니 맨 하는 짓이라고는 고고학밖에 더 있겠으며, 이번 경북 북부 산불 터지니 막상 산불은 제대로 아는 놈 하나 없.. 2025. 4. 4.
학예직 채용의 역설과 그 문제점 2025년 국가유산청 학예연구사 채용 공고다. 전공 학력 차별 이런 이야기는 이 자리서는 집어치고 다른 문제를 짚어본다. 저 채용 공고를 보면 지금 빈 자리를 채우고자 함을 본다. 미래가 아니라 오늘 당장 급해서다.이 자리 비었으니 이 자리를 채우자 딱 이거다. 비단 국가유산청만이 아니라 저와 같은 현상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는데, 몇 년 지나면 어찌되는가?다 딴 자리 가 버린다. 다시 시간이 지나면 어찌되는가?다 승진해서 다시 딴 자리로 튀어 버린다. 이것이 전문직의 역설이다. 그렇다고 저들더러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에 있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세대 교체 차원에서도 당연히 새로운 인력을 뽑아야 하는 것은 사실인데, 매양 저 꼴이 벌어져서 몇 년 뒤에는 또 똑같은 자리 새로 채운다. 그리하여 애초에.. 2025. 4. 4.
남이 들어주건 말건 끊임없이 세계를 향해 발신해야 한다 내가 하는 말들을 저쪽에서 귀담아 들어줄 사람 있겠는가? 그래도 나는 계속 발언해야 한다고 본다. 예컨대 나는 지금 우리가 보는 스톤헨지가 지금과 엇비슷한 단순 거석기념물이 아니라 본래는 거대한 봉토분에서 봉토, 다시 말해 흙더미가 다 날아가고 남은 그 주축 앙상한 뼈다구라는 말을 했다. 혹 저들 서구 쪽에서 내 이런 주장을 눈여겨 볼 친구가 없지는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을 걸고서는 간단히 요지만 적출한 영문본을 작성하기는 했지만, 안 들어주면 또 어떤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 6세기 무렵 글자가 있는 칼 한 자루가 나왔는데 후쿠오카 모토오카 검이던가? 나는 그 명문을 토대로 이것이 바로 삼인검三寅劍 사인검四寅劍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걸 기사화했고 그 소식이 일본 학계로 거꾸로 들어간 것.. 2025. 4. 4.
[국가유산청]2025년 학예연구직 공무원 채용공고 국가유산청 2025년 학예연구직 공무원 채용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미술사, 민속(무형), 고고학, 보존과학 등 총 8명을 채용합니다. 경력(임용예정 직렬 공무원 또는 민간경력) 또는 학위(관련분야 전공자로 석사학위 이상) 중 해당하는 응시자격 요건이 충족하면 응시할 수 있습니다. 미술사 분야는 근무예정부서(국립해양유산연구소)로 보아 아무래도 세부전공으로 도자사가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보 공유 차원에서 국가유산청의 학예연구직 채용 공고문을 올려봅니다만, 동일한 학예연구직 공무원이더라도, 어디에서 근무하느냐에 따라서 하는 업무와 처우가 천차만별인 현실이 오늘 따라 너무 쓰게 느껴지네요.   http://www.khs.go.kr/multiBbz/selectMultiBbzView.do?id=874.. 2025. 4. 4.
[spinoff] 인도 전차 발굴 논쟁 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잠간 언급한 인도 아대륙 청동기시대 전차 발굴은 2018년에 있었다. 관련 소식을 따로 정리한다. 당시 이 소식을 비교적 자세히 보도한 한 아티클을 교재로 삼는다. 인도 아대륙Indian sub-continent에서는 처음으로, 철기 이전 시대Pre-Iron Age(청동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차chariots가 있는 매장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이 새로운 발견은 마하바라타 시대Mahabharata period의 연대를 밝히고 하라파 시대Harappa age 말馬의 기원을 더 조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는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주 사나울리Sanauli에서 3개월간 시범 발굴에 참여한 전문가들 의견이다. 이런 매장 구덩이는 라키가리Rakhigarhi.. 2025. 4. 4.
[나이] 내가 본 늙은이들, 내가 꿰찬 그 자리 나는 아버지가 강제징용 세대라 그런 아버지가 먼저 장가드신 첫번째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른바 재취해서 낳은 아들이다. 요새는 용어까지 바꾸어서 강제동원 어쩌고저쩌고 하더라만, 아버지 세대가 쓰는 말은 강제징용이었다.예서 강제징용 세대란 1920~1925년 어간 태생을 말한다. 이들이 태평양전쟁에 집중해서 탄광이니 하나는 데로 징발되기에 이르는데, 1921년생 선친이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버지 실제 출생은 1922년이라 하는데, 죽은 형님과 뒤바뀌어 1년 빨리 호적에 올랐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호적이니 암튼... 나는 그런 아버지 연세 마흔일곱에, 아주 늦게 본 아들이다. 뭐 요새 정우성을 필두로 쉰 줄에, 또 하정우 아버지 김용건은 칠순에도 후손을 보더라만, 그러고도 이 양반 네살 터울 ..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5] 거마의장도의 말 (7) 위 그림을 보자.  인도문명의 기원전 2500-2000년 즈음에 인더스 문명이 있다. 이 인더스 문명이 사라지고 또 다른 문명이 인도아대륙에 출현하는데 그것이 바로  "Vedic India"이다. 이렇게 이름 붙은 이유는 이 시대가 힌두교 경전 중 가장 오래된 성전인 "베다 (Vedas)"와 관련이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베다시대 (기원전 1500-기원전 500)야말로 이후 힌두교와 산스크리트 문학이 처음 형성되고 번영하기 시작한 시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는 "인도문화"가 바로 베다시대 문화와 매우 관련이 깊다고 한다.  인도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더스문명"과 "베다시대" 사이에 중대한 단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대한 단절"이란 "기억의 단절"을 의미한다.  무슨 말인..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4] 거마의장도의 말 (6) 아리안-말-전차의 흐름은 인도사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알다시피 인도사에는 가장 첫머리에 인더스 문명 (하라파 문명)이 있다. 인도 고고학에서는 인더스 문명은 전쟁이 거의 없었으며 정예화한 군대도 없는 평화로운 사회였다는 개념이 강하다.인더스 문명은 군대와 무력보다는 무역과 종교로 결합된 사회로지배자는 군인, 황제가 아니라 승려와 같은 집단이었을 것이고 평상시 전쟁도 거의 없었던 사회"라는 것이다.그 근거 중 하나가 제대로 잘 만들어진 무기가 인더스 문명 시기 유적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들 수 있다.이 부분은 일정 정도 사실이다.인더스 문명 유적에서는 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제대로 된 무기가 발견된 적이 거의 없다. 사실 인더스 문명이 번영하던 당시에는 주변에 이렇다 할 강적이 없었다..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3] 거마의장도의 말 (5) "아리안"이라는 인종이 있다. 나치즘과 관련해서 유명해졌지만 이 "아리안"이라는 용어는 사실히틀러와 그 추종자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며고고학적 진실에 상당한 수준의 뻥이 가미되어 성립된 것이다. "아리안"이라는 용어는 "인도-유럽어족"과 겹치지만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한 실체를 가리킨다. 사실 말의 사육은 인도유럽어족, 혹은 아리안 족의 상징이다. 이 때문에 말의 사육과 확산에 대한 이론과 인도유럽어족의 확산과 관련된 지도를 보면상당 부분 겹친다. 이 둘은 함께 이동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하자면, 말이 끄는 전차의 확산, 이것도 이 인도유럽어족이나 아리안 족의 확산과 상당부분 겹친다. 인도유럽어족, 사육마, 전차. 이 셋은 고대 시기 함꼐 이동한 ..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2] 거마의장도의 말 (4)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인 기마민족설"은 어디서 왔는가? 이 설 자체는 한국에서 처음 주장된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오래된 설도 아니다. 이는 옛날 신문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데 한국인이 기마민족이라는 주장은 저 유명한 에가미 나미오의 기마민족일본정복설에서 기원한다. 그 이전에는 이런 개념은 한국사에도 없었다. 원래 일본 쪽에서 기마민족 일본정복설을 이야기할 때여기서 기마민족이란 다름 아닌 고구려 계열 민족을 가리킨다. 이때나 지금이나 일본의 말과 기마에 관해서는 서기 5세기 보다 많이 올라가기 힘든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로따라서 5세기 고분의 급변은 대륙의 기마민족에 의한 것이다, 라고 말할 때는사실 그 "기마민족"이 유목민족이라던가아니면 말을 옛날부터 타온 전통적 말사육 민족이라던가이런 개..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1] 거마의장도의 말 (3) 아래는 한반도 말과 소위 기마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전에 써 둔 글이다. 마왕퇴 이야기에 부친다. ---------------한반도 말의 역사를 보는데 방해가 되는 선입견이 있으니 1. 우선 한국인은 기마민족이라는 유명한 선입견이 있다. 사실과 다르다. 한국인은 농경민족이며 말이 도입된 것도 다른 지역보다 많이 늦다. 한국인이 졸지에 기마민족이 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아마도 아메리카 대륙을 빼고는 가장 말 도입이 늦은 지역이 아닐까 싶은 일본열도 때문이다. 이 기마민족 운운의 선입견을 빼야 한반도 말의 역사가 제대로 보인다. 2. 말뼈가 나오면 무조건 사육되었다는 생각 우리나라는 발굴현장에서 말뼈가 나오면 무조건 말 사육의 증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이런 말뼈는 다른 나라에서는 사육말이라.. 2025. 4. 3.
[마왕퇴와 그 이웃-80] 거마의장도의 말 (2) 계속 쓴다. 우리가 말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특히 한국인의 경우에는, 한국인이 기마민족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왜 그런가 하는데 대해서는 누차 이야기한 바 있다. 결국 한국인은 말의 역사에서 보자면 결코 일찍부터 이를 탄 민족은 아니며일본보다야 빠르겠지만 중국보다도 말을 일찍탔다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라는 것이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말사육의 역사는 소 사육의 역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소의 조상이 되는 야생 소 (원우)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었기 때문에 소 사육이 시작되기 전에도 소뼈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는 야생 소로서 키우던 소가 아니다. 전 세계의 모든 소는 인도 혹소를 제외하면 모두 메소포타미아 출신이다. 심지어는 한국의 황소도 그렇고 일본의 와규도 예외 없다... 2025. 4. 3.
스페인에서 출현한 기원전 1세기 알파벳 Early evidence of writing found at La Peña del Castro, Spain스페인 라 페냐 델 카스트로에서 로마 이전 기원전 1세기 알파벳 유물이 나왔다는데, 스페인 레온León이라는 곳에 라 에르시나La Ercina라는 데가 있는 모양이고, 거기에 다시 라 페냐 델 카스트로La Peña del Castro 라는 곳이 있는 모양이라, 이곳을 정식 고고학 발굴조사를 했더니만 그만 생각지도 못한 성과가 나왔다고 고고학도들이 흥분한다는데이유인즉슨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실물 자료를 찾았기 때문이라 하는데이번 조사는 이곳에 터잡은 레온대학이라는 데서 맡은 모양이라 이 발굴 과정에서 직물 생산 도구인 방추차spindle whorl에서 켈티베리아 문자 각자 Celtiberia.. 2025. 4. 3.
결코 순진무구純眞無垢할 수 없는 농민 아버지가 학교 문전에도 못간 까막눈 농부.내가 나와 선친을 두고 항용 하는 말이지만이 말 자체는 부끄럽거나 그렇다고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닌 fact다.한데 사정을 모르는 자들이 이를 일러 농민이라고 하고, 민중이라고 하고, 善의 구현자인양 순진무구의 대명사인양 떠들어대는 꼴은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엄마 아부지는 순진하시며 그래서 약아 빠질 수도 없으며 악의로는 무슨 일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간주하는 행위. 이는 농민을 바보 등신 천치로 만드는 일이다. 너희가 그리는 그런 농부는 이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 우리 엄마 아부지가 억척스럽기는 했다만 그렇다고 순진했던 것만은 아니다.  한데 이런 사정을 너무나 잘 아는 자 중에 지 애미 애비를 바보 등신 천치로 아는 사람이 있다. 예컨대 대.. 2025. 4. 3.
Stonehenge is a stone chamber of a burial mound People who discuss Stonehenge today always view it as a megalithic monument. Yes, in any case, since they built such a large structure with such large stones in the Neolithic Age, it must be considered a megalithic monument. However, at this point, what we need to think about is whether the people who built and operated it in that form that we see were also thinking that way. In other words, who.. 2025. 4. 3.
스톤헨지는 봉분이 날아간 무덤이다! 항용 스톤헨지 지금을 논하는 사람들은 이를 거석기념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그래 그 어떤 식으로건 신석기시대 저만한 건축물을 저만한 석재들로 쌓았으니 거석巨石 기념물로 보아 대과가 없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은 우리가 보는 저 형태 비스무리하게 저걸 세우고 운영한 사람들도 저리 여겼느냐는 전연 별개하는 문제다. 다시 말해 돌덩이 세우고 뉘고 해서 저런 양태로 무슨 신전 형태로 건립하고는 저에서 각종 의식을 치렀느냐는 전연 별개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저 양태는 이러하다. 보다시피 주변으로 원형 환호를 돌렸고 그 복판 일정구간마다 꼭 지금 콜로세움 보듯이 그 비슷한 거대한 돌덩이 무리를 쌓았으며 그로 통하는 문은 메인 엔트런스가 동쪽에 하나, 서남쪽에 간이문 하나 정도가 있었다고 본.. 2025. 4. 3.
지하에서 출현하는 색슨 왕조 시대 말 In 2023 we uncovered a second Saxon horse burial at Tarmac's Broom South Quarry. The horse would have stood around 145cm at shoulder height and would have been aged three to three and a half years. This is a much younger animal than the horse burial excavated in 2022, which would have been 15-20 years of age. #archaeology 이런 식으로 간단히 소개한다.2023년에 우리는 Tarmac's Broom South Quarry에서 두 번째 색슨 왕조 시대  말 .. 2025. 4. 3.
[마왕퇴와 그 이웃-79] 거마의장도의 말 (1) 3호묘에서 나온 유물에 대해서는 김단장께 설명을 미루어 두었지만, 이 무덤에서 나온 거마의장도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3호묘의 피장자는 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에 의해 2대 轪侯인 利豨로서, 기원전 168년 경에 뭍힌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말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다른 사육동물에 비해 출현이 늦어소의 경우 이미 용산문화시기에는 뚜렷한 사육의 족적을 남기는데 반해 말은 상나라 시기까지 내려와서야 제대로 사육된 흔적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동아시아 전체가 말 사육이 서방보다는 많이 늦어서 중국은 상나라지만 우리와 일본은 더 늦어서 필자가 아는 한 말과 소 등 대동물 사육은 우리의 경우는 점토대토기 단계, 그리고 일본에서는 서기 4-5 세기 정도가 되어서야 간신히 모습을 드러내는 .. 2025. 4. 3.
[마왕퇴와 그 이웃-78] 미라가 없는 3호묘 3호묘를 발굴 해 가면서 1호묘와 거의 비슷한 구조가 속속 확인되었다. 백고니와 숯으로 곽실 주위가 밀봉되어 있었는데그 안에는 잘 보존된 관곽이 확인되었다. 3호묘의 곽실을 열자 그 안에는 풍부한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사람들을 흥분시켰는데 마왕퇴에 뭍힌 대후의 일가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한 물증이 나왔다. 그 내력에 대해서는 여기 자세히 쓰지는 않겠고, 단지 필자의 경험으로 부연할 이야기가 있는 부분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마왕퇴 3호묘에서 확인된 유물의 문화적 측면에 대해서는김단장꼐서 조금 더 자세히 부연할 것이라 생각한다. 3호묘를 조사하던 중 여기서도 소위 "T자형 백화"가 나왔는데 1호묘에서 이 T자형 백화에 피장자가 노부인으로 그려져 있었듯이 여기에는 유씨관을 쓰고 붉은 두루마기를 입고 허.. 2025. 4. 3.
[마왕퇴와 그 이웃-77] 마왕퇴에서 보는 폼페이의 그늘 연전에 김단장께서 폼페이의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모습을 석고로 떠내는 이야기를 여러 번 이곳에 소개한 한 바, 마왕퇴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있다. 마왕퇴 3호묘 발굴 현장에서 무덤을 파들어 가던 중 묘도의 흙벽 위에서 구멍 두 개가 동시에 나타난것이다. 처음에는 이 구멍을 도굴 구멍으로 생각했었는데 도굴구멍으로 보기엔 너무 구멍 크기가 작었다. 그러면 야생동물이 판 구멍인가? 그렇게 보기에는 반대로 너무 컸다. 이 당시 발굴단은 파들어가던 작업을 중단하고 이 구멍에 석고를 부은 다음 두어 시간 후 주변흙을 파내어 제거했는데 석고의 모습은 1 미터 정도의 사슴 뿔을 쓰고 무릎을 꿇은 채 양팔을 좌우로 벌린 형태의 "인형" 모양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이 석고로 뜬 인형의 모습은 영화로도 촬영되었다고 하는.. 2025.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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