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8909 습지 미라계의 절대 셀렙 톨룬드 맨의 마지막 식단 Last meal of ancient human sacrifice victim 'Tollund Man' revealed in exquisite detail By Laura Geggel published July 22, 2021 Before he was hanged, Tollund Man ate porridge and fish.- 고대 인신공희 희생자 '톨룬드 맨'의 마지막 식사가 정교한 세부로 공개되다- 톨룬드 맨은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에 죽과 생선을 먹었다. 기원전 400년 무렵 폭력적인 죽음 직전, 덴마크의 유명한 습지 미라 bog body "톨룬드 맨Tollund Man"으로 알려진 한 남자가 죽porridge과 생선을 먹은 것으로 새로운 연구에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톨룬드의 대장 일부를 연구하여.. 2025. 3. 30. 막말의 사무라이 칼과 칼집 근간 김단장께서 올리는 칼과 칼집의 글에 공감하는 바 많아 글을 조금 같이 올려둔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에도시대 말, 즉 막말 시기 칼차는 관습에 대해 쓴 이야기가 있다.원문에서 발췌하여 정리해서 써 보면 이렇다. 칼은 본래 일신을 보호하기 위해 차는 것인데오랜기간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점차 칼날은 완전히 없어졌지만 여전히 겉모양만은 꾸미게 된다. 검술도 모르는 주제에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습관이라거나 무사의 심벌이라 하면서 칼을 차고 다닌다. 검술을 알지도 못하면서 칼을 차는 자가 열에 여덟아홉이다. 칼로 먹고 산 사무라이들도 막말이 되면 칼을 쓰지는 않아도 칼집을 꾸미고 다녔다. 고도로 아름다운 세공품 칼과 칼집은 전부 에도시대 것이다. 앞에서도 썼지만 에도시대 사무라이는 칼을 함부로 뽑지 않았.. 2025. 3. 30. 수입산 팔목 보호대를 찬 4천500년 전 전사! Archaeologists in Germany’s Salzlandkreis district have uncovered a remarkable 4,500-year-old burial site linked to the Bell Beaker culture, featuring the graves of three warriors. 독일 잘츠란트크라이스Salzlandkreis 지구 고고학도들이 이른바 벨 비커 문화Bell Beaker culture와 관련된 4,500년 전 매장지를 발견하고 이에서 세 명 전사가 묻힌 무덤들을 확인했다 한다.특이한 점은 개중 한 명은 궁수가 사용하는 고대 보호 장비인 팔 보호대arm guard를 여전히 착용한 채로 발견되었다는 대목이다. 매장지에는 화살촉, 도기 그릇, 퇴적물로 .. 2025. 3. 30. 추리소설 같은 외국 고고학 논문, 재미 jotto 없는 한국 고고학 논문 그래 왜 굳이 고고학만 맨날맨날 지목해서 물고 늘어지느냐 한다면 대답 딴 게 없다.진짜 몰라?그만큼 애착이 많고 그런 까닭에 여전히 미련을 못 버려서라는 걸?그래 한편으로는 그리 계속 죽죽 뻘짓해주어야 내 존재가치가 있지도 않겠느냐마는 그래도 같이 어깨동무하고 나가는 것이 그래도 남들 보기에도 낫지 않겠느냐 이 말이지.진짜 논문이건 뭐건 진짜 고고학 글 재미없어.어느 정도로?jotto 재미없어.나는 고고학이 장착한 최고 매력이 흥미 재미라고 생각해.한데 그러해야 할 고고학 글이 왜 저리 궁상맛게 jotto 재미 없을까 고고학도 스스로 의아스럽지 않냐 이거야.그래 너희들 세계에선 그게 재미를 어느 정도 줄지는 몰라도 너희가 아무리 바보라도 그 바깥을 벗어난 독자들이 이런 글을 혹닉하리라 생각할 정도로 담대.. 2025. 3. 29. 2016년 인도학회 벌써 10년이 다되가는 옛날 학회인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보여 조금 올려둔다. 인도에서 2016년 있었던 학회이다. 데칸대에서 개최되었다. 2025. 3. 29. 보호각이 불상을 죽였다 예상대로 의성 관덕리 석조보살좌상은 결국 문화재 보호각이 불상을 죽인 것으로 드러났다.오늘 현장을 다시 찾은 이천호 선생 조사에 의하면 이 석불은 이번 의성 산불에 그 보호각이 불이 옮겨붙어 폭삭 주저앉는 바람에 산산 조각났다.조각들은 붕파 전에 찍은 사진들과 조사 자료 등을 토대로 어느 정도 복원은 가능하겠지만 적지 않은 상흔을 안았다.같은 구역 삼층석탑은 방염포를 설치하긴 했지만 보호각이 없어 외려 화마를 피한 것으로 드러났다.근처는 나대지라 아예 불길조차 가지 않았다..따라서 불상 보호각은 그 자체가 불길을 잡아당긴 것으로 나타났다.보호각이 없었으면 피해가 없었을 거란 뜻이다.문화재 보호한다고 만든 보호각이 문화재를 죽인 이 역설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첨부 사진 저작권은 모두 이천호 선생에 속한다.. 2025. 3. 29. 이전 1 ··· 4 5 6 7 8 9 10 ··· 315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