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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

[마왕퇴 spinoff]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무령왕릉 만행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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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

 
나는 작금 신동훈 교수님과 함께 세계 미라를 정리 중이라, 그 와중에 지금은 마왕퇴 미라에 집중하거니와 

그것이 발굴된 때가 1972년이라, 그 직전 1971년 무령왕릉 발굴, 그리고 같은 1972년 일본 고송총高松塚 다카마쓰즈카 고분 발굴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거니와 

이미 졸저 직설 무령왕릉(메디치미디어, 2016)에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기적으로 출현한 무령왕릉을 하룻밤만에, 것도 거의 남기지 아니하고 쏵 걷어버린 김원룡 발굴에 다시금 분노가 치솟아 올라 뒷목이 뻐근하다. 

이를 김원룡 스스로는 내 머리가 돌아서 그리했다 했지만, 그래서 사과 혹은 사죄를 했다 했지만 그런 사죄가 나온 시점이 90년대 들어와서야였고 

그 이전에는 그런 의식 자체가 아예 없었다. 

당시 우리 고고학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말로 위로 변명하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이 지구상에서 1970년대에 그리 발굴해도 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지구상 딱 한 명밖에 없었다. 

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 나는 이를 강간이라 했다. 

그는 무령왕릉을 강간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면 그는 고고학도가 아니었다.

제정신 박힌 고고학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지, 그렇게 해서 발굴해도 된다 해서 그리했을 뿐이지, 딴 이유 필요없다. 

그는 무허가 고고학도였다. 

이 무허가라는 말이 관련 교육? 이딴 말 필요없다. 

개돼지도 3년간 발굴현장을 얼쩡거리면 저리 발굴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정식으로 고고학 교육을 안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왜 그런 교육을 대학에서 받아야 하며, 학위로 증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 어떤 누구도, 심지어 개돼지도 3년만 그 현장을 얼쩡거리면 저리 조사하지 않는다.

그는 고고학적 마인드도 없었고, 고고학적 교육도 스스로 세뇌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그런 중차대한 발굴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민족적 수치요 죄악이다. 

이런 그가 마왕퇴 발굴을 맡았다면, 하룻밤만에 쏵 무덤 걷어치워 버리고 그날 밤 바로 관뚜껑 열어 시체를 꺼냈을 것이요

이런 그가 고송총 발굴을 맡았다면, 역시 하룻밤만에 모든 조사 완료하고선 그 이튿날 아침, "속이 후련하다"며 냅다 동경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의 이름으로 행하는 그 어떤 추숭작업도 집어치워야 한다.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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