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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

[마왕퇴와 그 이웃-58] 보존이냐 부검이냐

by 신동훈 識 2025.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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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심복 주은래. 사인방 때문에 결코 안전하지 못했지만 모택동이 그를 깊이 신뢰하여 그는 버틸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왕퇴 한묘에서 나온 미라는 보존하기로 결정이 되어 

의과대학과의 협의하에 고정액 (방부액)에 담그어 처리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태로는 완벽한 보존을 기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잘 알고 있었다. 

시신에 대해 이런 식으로 외부로 부터 방부액을 침투시키는 방법은

생각보다 효과적이지 않아서 아주 아주 느리게 내부로 침투하기 때문에 

외부가 과다하게 처리되었다 싶을 때에도 정작 내부 장기는 전혀 방부액이 침투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의학 등 분야에서 시신을 장기적으로 보관하여 검사해야 하는 경우에는

냉장보관을 하거나 혈관으로 방부액을 흘려 보내어 방부처리를 한다. 

이런 방법도 금방 사망한 경우에나 가능한 것이고 이미 2천년 전에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이 서한시대의 귀부인 시신을 보관해야 한다면 반드시 부검을 하여

부패의 원인이 될 내부 장기를 제거 해야 한다는 것은 관련 의학자들은 모두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마왕퇴 한묘의 귀부인에 대해 부검을 시행하여 내부 장기를 제거할 것인가는 그러나 당시로서 결정하기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부검을 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형식으로건 손상을 남기기 때문에 

이처럼 국가적 관심사가 된 경우, 부검의 결정은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였다. 

1972년 10월, 부검이 필요하다는 공식적 보고서를 호남의과대학에서 올리자, 

도박구의 왕야추가 이를 추인하여 다시 승인을 상부에 요청하였고 

결국 마왕퇴 한묘 귀부인의 부검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주은래의 손에 달리게 되었다. 

이 당시 중국 정부에서 마왕퇴 한묘 미라의 부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논의 한 내용은 회의록이 남아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당시로서 논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이 검토되어 상당히 신중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주은래는 최종 결정 이전에 곽말약에게 의견을 물었다. 

곽말약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으로 

임상의사는 아니지만 상당한 정도의 인체 연구에 대한 식견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는 "일본도 이 연구를 주시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부검을 권하였고, 

주은래는 최종적으로 이를 결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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