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101 [마왕퇴와 그 이웃-29] 장사長沙 한묘漢墓의 특이한 점 최근 포스팅하는 김 단장님 글을 보니 이전에 게시한 아래 글은 조금 숙고가 필요해졌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필자의 생각을 정리할겸 약간 고쳐 다시 포스팅한다 [필자 주]. ***마왕퇴 미라가 나온 무덤은 한대의 무덤으로 이른바 "목곽묘"다. 우리나라도 낙랑 고분과 관련하여 한대 목곽묘에 대해서는 전공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연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대동강 유역 목곽묘는 중원과는 그 양상에 있어 차이가 있다던가, 전축묘 대신 소위 귀틀무덤이라는 목곽이 더 오랫동안 최정상급 지배층 묘제로 사용되었다던가, 하는 소위 대동강 목곽묘의 "베리에이션"도 많이 지적된 것으로 들었다. 마왕퇴 한묘도 베리에이션의 측면에서 볼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마왕퇴 한묘도 넓게 봐서야 한대 목곽묘에 당..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8] 부검을 시행한 이유 앞서 마왕퇴 미라에 대한 부검을 곽말약이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마왕퇴 의학조사는 그 목적이 과학적 연구도 있었겠지만일차적으로는 이 미라의 보존에 있었다. 당초 미라가 발견된 후 이 미라가 문화적 가치가 있는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한 건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던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아니 의견이 엇갈린 것이 아니라 마왕퇴 보존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여 마왕퇴 한묘를 조사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봉건 지주계급을 옹호하는 주자파라는 주장이 문혁의 바람을 타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따라서 현지 고고학자들이 상부에 이 미라를 보존해야 하는가 라는 문의를 중앙 정부에 했을 때, 이 보고를 먼저 접한 사인방의 일파는 미라는 보존의 가치가 없다. 보존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 2025. 3. 4. [만성한묘满城汉墓] 금루옥의金縷玉衣, 고대 중국이 남긴 또 하나의 미라 [1] 거대한 산상 지하궁전 주로 미라에 집중하면서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를 논하매, 우리는 비록 미라가 나오지는 아니했지만, 같은 시대에 만든 비슷한 무덤으로, 마왕퇴 발견 직전에 중국을 경천동지케 한 저 만성한묘满城汉墓를 찾지 않을 수 없다.이 만성한묘는 저 남쪽 한漢 문화 직접 유산은 아니지만 역시 동시대에 적지 않은 한 문화 세례를 받은 비슷한 시대 남월왕묘南越王墓와 더불어 반드시 같이 짚어야 한다. 이 셋은 첫째 만든 시기가 거의 같고 둘째 묻힌 사람 신분이 대략 비슷해서 제후왕 혹은 그에 버금하는 일가부치 무덤이요, 셋째 무엇보다 그 대략하는 양상이 거의 관통하기 때문에 반드시 같이 짚어야 한다.더구나 남월왕묘와 지금 다루는 만성한묘는 비록 시신은 다 썩어문드러졌지만 금루옥의金縷玉衣라 해서 ..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7] 곽말약의 실언 (?) 마왕퇴 발굴 조사에 위에서 엄호사격을 한 두 인물, 주은래와 곽말약도 문혁과 사인방 서슬에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 중 곽말약은 마왕퇴 때문에 한 번 크게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그 사연은 이렇다.곽말약이 마왕퇴에서 발견된 1호 묘 미라가 도대체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묻는 일본기자의 질문에 여담 삼아 했다는 이야기가 하나 떠돌았는데, 그 사연인즉슨, 서한 문제 때 황제와 이름 모를 궁녀 사이에 난 사내 아이가 곧 나중에 한 경제가 되었는데 문제의 아들을 낳은 후 질투하는 황후에게 쫒긴 그 후궁은 장사 땅에 몸을 숨겨 자신이 낳은 아들이 나중에 경제가 된 후에도 자신이 모친임을 알렸지만 경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알려질까 두려워 하여 그녀를 장사땅에 모셔 두고 극진히 .. 2025. 3. 3. [마왕퇴와 그 이웃-26] 마왕퇴 한묘에 대한 의문 마왕퇴 관련 책을 읽다보 니, 중국에서 대형 목곽 묘실제도가 완성된 것은 전국시대와 서한시대 사이인데이 시기에는 아직 관곽 바깥에 별도의 묘실을 쌓는 전통은 없었다고 한다. 제왕과 고위관료 등 무덤을 중심으로 관곽 바깥에 벽돌 등으로 별도의 묘실을 쌓는 전통은 서한 말에서 동한 초에 생겨난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마왕퇴에서는 묘실 없이 관곽만 보이고, 남월왕묘에서는 관곽 외에 별도의 묘실을 쌓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두 무덤 모두 서한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책에서 본 위 이야기가 정확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건 마왕퇴 한묘가 만들어지던 시대에 이미 고위급 왕공 무덤은 별도의 묘실을 두는 것이 한 흐름이었다면마왕퇴 한묘에서는 그것이 안 보인다는 점은이 무덤이 아무리 화려.. 2025. 3. 3. [마왕퇴와 그 이웃-25] 팽륭상彭隆祥 (25)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마왕퇴 고시연구라는 책은 당시 중국사회의 전통에 따라 집체창작으로 누가 쓴 것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 기억으로는 이 책에는 호남의학원인가 하는 이름만 적혀 있을뿐팽융상이라는 이름은 따로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가 팽융상이란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은 그 후 1980년대에 서구에 투고된 그의 영문 논문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나중에 고시연구 중국어 보고서 원문을 입수하여 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팽융상은 서구의 출판물에 마왕퇴 연구결과를 영문으로 투고했는데 그 내용은 고시연구에 쓴 내용을 간추린 것이었다. 이 논문에는 문물출판사에서 나온 고시연구와는 달리 그의 이름을 저자로 적어 냈다. 이 논문을 보면서 필자는 중국의 고시연구 보고서 자체가 팽융상이 사실상 집필 책임을.. 2025. 3. 3.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7 다음 반응형